지난 3일 진행된 금융감독위원회의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업무보고. 핵심 현안 중 하나는 저(低)신용자 신용회복 지원 방안이었다.
보고를 앞두고 금감위의 고민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금감위 관계자는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의 공약 사항인데 못하겠다고 할 수는 없는 것 아니냐”고 했다. 그래도 아닌 것은 아니었다.
저신용자들의 신용회복을 지원해주는 것이야 충분히 공감하지만, 연체기록을 말소해주겠다는 ‘신용 대사면’에 대해서는 동의할 수 없다고 했다. 그는 “연체기록 말소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반대 의견을 분명히 전할 것”이라고 했다.
업무보고 후 인수위 측의 브리핑은 의외였다. “패자부활의 차원에서 연체기록 말소도 해주기로 했다. 금감위측도 반대가 없었다.” 주무부처의 반대도 없었으니 강행하겠다는 것이었다.
금감위가 왜 꼬리를 내린 것일까? 금감위 관계자는 인수위측 발표에 몹시 당황했다고 했다는 후문이다. “공약이니까 해야 한다는 원칙만 되풀이 됐죠. 각론을 이야기할 상황이 전혀 아니었습니다.”
금융회사에게 고객들의 신용기록은 돈과도 바꿀 수 없는 중요한 자산이다. 그 기록을 삭제하라는 것은 정부가 강제로 금융회사의 자산을 빼앗겠다는 것과 마찬가지다. 금융계 고위 인사는 혀를 끌끌 찼다. “금융회사들은 어떻게 신용평가를 하란 말입니까. 부실 대출이 이뤄지면 정부에서 책임을 져 주는 겁니까?”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은 “당당하게 친기업이라는 말을 쓰겠다”고 했다. 하지만 최근 ‘신용 대사면’ ‘통신비 20% 인하’ 등을 강행하는 것을 보면 반드시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친기업, 친시장’은커녕 ‘반기업, 반시장’적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벌써부터 민심을 잡겠다고 시장 논리를 외면한 정책들을 내놓는다면 향후 5년이 걱정스러울 수밖에 없다.
이영태 경제산업부 기자 yt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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