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원 지음 / 열화당 발행ㆍ230쪽ㆍ1만5,000원
건축가 김원(65)씨는 이력을 밝힐 때 서울대가 아니라 김수근 건축연구소에서 수업했다고 말한다. 그만큼 실제로 집짓는 일을 중시하고 그걸 배운 것이 진짜 수업이라고 여긴다.
네덜란드에 유학한 실용주의자답게 환경건축이란 흙이나 나무 같은 자연소재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공간과 에너지를 가장 효율적으로 쓰게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동시에 일찍부터 후배들과 풍수연구모임을 만들어 전통사상이 지켜온 환경건축의 의미를 되살리려고 애썼다.
직각으로 모던하게 올라가는 주한러시아대사관을 짓는가 하면 풍수를 고려해 독립기념관의 터를 잡는 일은 이런 복합적인 배경이 있어서 가능했다.
‘내일의 한국건축을 위한 열 세 개의 단상’이라는 부제를 붙인 이 건축론 책에서 그는 전통사상쪽으로 더 다가간다.
같은 공간이라도 쓰임새에 따라 침실도, 집무실도, 응접실도 되는 가변적인 주택, 주변환경에 철저하게 순응하는 정신, 선비들이 건물의 철학과 규모만 제시하면 장인들이 나머지를 채워 올려서 건축가는 이름도 도면도 남기지 않고 사라져 버리고 마침내는 건물을 쓰는 이들에 의해 건축이 완성되는 한국 전통의 건축관이 바로 인류가 되찾아야 할 건축의 근본정신이라고 그는 주장한다.
이런 관점에서 그는 서양건축의 걸작을 재평가한다. 파르테논신전처럼 과시적인 건축물을 좋게 보던 서양은 현재도 건축가가 ‘예술 작품’처럼 만든 건물을 높이 산다.
하지만 그가 보기에, 근대건축의 최고 걸작으로 꼽히는 프랭크 로이트 라이트의 ‘낙수장’은 폭포 곁에 아슬아슬하게 세워져 물소리가 시끄럽고 습기차서 주인조차 외면한 주택이며 프랭크 게리의 빌바오 구겐하임미술관은 안에 담긴 미술품이 아니라 건물만 눈에 띄는 실패작이다.
반면 늪가에 열 여섯개 작은 미술관을 흩어놓은 독일 인셀홈브로이히 미술관, 길게 이어진 주랑이 조선의 정신을 느끼게 하는 종묘, 소백산의 연봉을 절 속으로 끌어들인 부석사 안양루에서 건축가는 잊혀졌지만 그 안에 들어온 사람들은 행복을 느낀다.
그는 이용자가 좋은 삶을 누릴 수 있는 건축이 좋은 건축이며 좋은 건축가는 스타가 되려 하지 말고 좋은 건축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외국 독자를 위해 영역중이다.
서화숙 편집위원 hssu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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