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오늘의 책] 연애소설 읽는 노인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오늘의 책] 연애소설 읽는 노인

입력
2008.01.08 04:29
0 0

루이스 세풀베다 / 열린책들"인간이 곧 밀림이다" 자연을 위한 서사시

아마존 밀림 부락에 사는 노인 안토니오 호세 발리바르. 어느날 그는 자신이 글을 쓰는 건 잊어버렸지만 읽을 수는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오래 전 삶의 변두리에서 ‘푸른 지옥’ 아마존으로 밀려 들어와 아내마저 잃고 원주민들과 섞여 혼자 살아가는 그의 유일한 낙은 일 년에 두 번 치과의사가 가져다주는 연애소설을 읽는 것이다.

‘베네치아의 운하를 따라 유유히 미끄러지는 곤돌라에서 뜨겁게 키스하는 남녀’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베네치아’도 ‘운하’도 상상하지 못할뿐더러 ‘뜨겁게’ 키스한다는 의미도 도대체 알 수 없어 상념에 잠기곤 하지만, 노인은 연애소설을 반복해서 읽고 또 읽으며 그 언어 자체를 자신만의 것으로 만든다.

발리바르 노인의 삶에 변화가 오는 것은 개발 바람을 타려는 노다지꾼들, 백인 사냥꾼들이 아마존을 찾아오면서다. 밀렵꾼의 총에 수컷과 새끼들을 잃은 암살쾡이가 그를 습격해 죽인다. 사냥꾼들은 살쾡이를 잡기 위해 정글을 가장 잘 아는 노인을 안내인으로 데리고 가는데.

노인은 그 짐승이 스스로 죽음을 찾아 나섰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결국 살쾡이를 잡은 노인은 아마존의 처녀성을 유린하는 모든 이들에게 저주를 퍼부으며 ‘이따금 인간들의 야만성을 잊게 해 주는, 세상의 아름다운 언어로 사랑을 얘기하는, 연애소설이 있는 그의 오두막을 향해’ 간다.

칠레 태생의 행동하는 작가 루이스 세풀베다(59)가 1989년 발표해 세계적 반향을 일으킨 이 빼어난 소설은 환경소설로 불리기도 하지만 거기서 그치지 않는다. 그가 그려낸 발리바르의 모습은 비슷하게 연상되는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 의 주인공 산티아고와는 또 다르다.

산티아고가 거대한 물고기와의 싸움에서 인간실존의 승리를 보여줬다면, 발리바르는 자연을 파괴하고 승리한다는 인간이 얼마나 위선적 존재인가 깨닫게 만든다. 한반도 대운하 논란이 가열되고 있다는 소식에, 발리바르 노인의 모습이 떠오르는 것이다.

하종오 기자 joha@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