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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감독 하명중의 나는 지금도 꿈을 꾼다] 대학 낙방 후 엉겁결 탤런트 시험 응시 '인생 전환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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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감독 하명중의 나는 지금도 꿈을 꾼다] 대학 낙방 후 엉겁결 탤런트 시험 응시 '인생 전환점'

입력
2008.01.08 0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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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9월 초. 우리 네 식구가 탄 승합차가 서울 톨게이트를 벗어나고 있는 시각은 새벽 4시였다. 뒤를 돌아보니 낡은 3톤 트럭이 이동영사기를 싣고 헉헉거리며 쫓아오고 있다. 17년 만에 만든 복귀작 <어머니는 죽지 않는다> 의 제작자인 내 아내 박경애, 주연인 큰아들 상원, 프로듀서인 둘째 아들 준원 그리고 감독인 나.

개봉 전 신병훈련소의 특별시사회에 참석하기 위한 행차였다. 우리는 <시네마천국> 의 알프레도와 토토가 된 냥 휘파람을 불며 달렸다. 하늘도 우리의 기분을 아는 듯, 서서히 여명을 초원 위로 밝혀주고 있었다. 그리고 어디에선가 들려오는 우렁찬 구호 소리에 취해 황금빛 초원이 춤추기 시작했다. 수천의 까까머리 신병들이 육군논산훈련소 연병장을 가득 메웠다.

나는 그들에게 말했다. “영화는 판타지다.” 그리고 필름을 돌렸다. 그들의 눈빛이 섬광같이 빛났다. 때로는 웃고 때로는 울었다. 가족들이 나를 쳐다보았다. 나는 미소 지었다. 나는 그들 속에 있었다. 19세의 방황하던 시절. 내게 판타지의 귀신이 찾아왔다. 그러나 나는 그게 뭔지 몰랐다.

1965년 봄, 지망 대학에 낙방한 나는 식구들의 시선이 따가워 우선 K대학 영문과에 입학했다. 머리를 숙이고 캠퍼스를 지나가는데 낯이 설고 이름도 잘 모르는 고교 동창들이 “너 우리 학교에 온 거야? 무슨 과야?”라며 반가워 했다.

그 학교에 입학한 게 친구들에게 알려지는 것이 싫어서 “응. 누구 좀 찾으러 왔어” 하며 재빨리 돌아 나왔다. 그렇지 않을 때는 재수를 하겠다며 이불을 뒤집어쓰고 있다가 막내 누나가 주는 용돈으로 낙방생 친구들의 아지트인 무교동 뒷골목 ‘사랑다방’에 가서 꽁초를 빨며 클래식 음악에 취해 천정만 쳐다보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친구가 급히 다방으로 들어오더니 손목을 잡고 “명종아, 잠깐 나하고 같이 좀 가자!”며 명동쪽으로 향했다. 우리는 왁자지껄한 명동을 가로 질러 남산 길을 달려 올라갔다.

친구는 높은 송신탑이 보이는 KBS청사 안으로 들어가며 이렇게 말했다. “혼자는 떨려서 같이 오자고 한 거야.” 그는 수위실 앞에 놓인 성우 공채 시험원서를 한 장 집었다. “나 성우 시험 보려고 해.” 그리고는 옆에 있는 탤런트 시험원서 한 통을 주며 “너도 시험 한번 봐”라고 하는 게 아닌가.

나는 “뭐, 내가?” 하며 그를 멍하게 쳐다보았다. “나 혼자는 떨려서 못 볼 거 같아.” 그는 매우 내성적인 친구였다. “싫어. 내가 어떻게 탤런트 시험을…” 나는 원서를 놓고 돌아섰다. 친구는 자기 것과 내 것 원서 두 장을 쓰며 “시험을 안 보더라도 시험 보는 날 같이 와 줘. 그래야 될 것 같아”라고 했다.

그는 중학교 시절부터 가장 가까운 친구 중 하나였다. 고등학교까지 우수한 성적을 유지한 그가 대학입시를 앞두고 갑자기 진학을 포기해 놀라게 하더니 그때 또 나를 놀라게 했다.

나는 그렇게 그 친구 보디가드가 돼 탤런트 시험을 응시했다. 면접을 보아야 하는데 나는 더벅머리에 평소처럼 형이 입던 누렇게 전 잠바를 걸치고 친구와 나란히 남산을 향했다.

성우 지원자는 적었지만 탤런트 지원자는 억수로 많았다. 정장을 차려 입은 멋쟁이 탤런트 지원자의 줄이 100미터가 넘어 남산 초입 퇴계로까지 늘어섰다. (당시 지원자가 5,000명이 넘었다고 한다.) 기가 죽어 망설이다가 ‘면접이 뭔지 구경이나 해보자’며 줄에 끼어 들었다. 잘 난 사람은 다 모인 것 같았다. 그때까지 보지 못한 옷, 구두, 액세서리가 그곳에 다 있었다.

한참을 보고 있노라니 내 몸은 어느덧 청사 안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처음 보는 방송국 안이 신기해 목을 빼고 둘레둘레 보고 있는데 줄 선 사람들이 모두 나를 보고 있지 않은가.나는 놀라서 고개를 숙이고 주위를 보았는데 저 앞에서 “뭘 두리번거려! 어이, 잠바 입은 친구. 이리 와 봐!”하는 소리가 들렸다. 주위를 다시 둘러 보니 잠바 입은 사람은 나 밖에 없었다. “그래. 앞으로 나와 봐!.” 와서는 안 되는 곳에 왔나 보다 하며 고개를 숙이고 조심조심 다가갔다.

큰 책상 위에 심사위원의 명패가 놓여 있었고 그 너머에서 나이 든 남자 7, 8명이 수군거리며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나는 더욱 겁에 질려 주먹은 꽉- 쥐고 두 눈은 크게 뜬 채 차렷 자세로 위만 쳐다보았다.

한 복판에 있던 남자가 웃으며 “자네 여기 왜 왔나?”하고 물었다. ‘친구 보디가드로 왔다고 해야 하나, 그러다가 무시했다고 야단치면 어떡하지...’ 잠깐 고민하다가 주먹을 불끈 쥐고 큰 소리로 “네, 시험 보러 왔습니다” 하고 대답했다.

“허허… 그런데 왜 주먹을 쥐나. 날 칠 텐가.” “아닙니다. 떨려서 그렇습니다.” 그는 껄껄 웃으며 “합격하면 정말 할 건가”하고 물었다. 나는 즉답을 할 수 없었다. 그가 빙그레 웃으며 다가 왔다. “나하고 약속 해. 배우 한다고!” 나의 양 어깨를 꼭 잡았다. 나는 얼떨결에 “네” 했다. 이렇게 해 나는 팔자에 없는 딴따라 인생을 시작했다.

이 길로 안내한 내 친구는 지금도 성우로 활동하는 김세한 님이고, 이렇게 내 인생을 영화로 바꾼 분이 지금은 고인이 된 희곡 작가 이진순 선생님이다. 매우 멋있는 분이셨다.

■ 하명중 약력

-1947년 서울 생

-영화감독, 연기자, 시나리오작가

-<안네의 일기> <서쪽나라의 장난꾸러기> 등 연극, <춘향전> <꿈나무> 등 TV 드라마, <땡볕> <최후의 증인> 등 영화 출연

-영화 <엑스> <땡볕> <태> <혼자 도는 바람개비> <어머니는 죽지 않는다> 등 감독

-아시아영화제 남우주연상 수상, 대종상 시나리오상 수상, 베를린영화제본선경쟁부문 입선 등

영화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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