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못지 않게 격식을 차리는 곳이 대만 관료 사회. 그런데 공식행사에서 랩을 부르고 흥겹게 춤을 추는 장관이 등장, 젊은이들의 새로운 '우상'으로 각광받고 있다.
주인공은 정부 대변인을 맡고 있는 셰즈웨이(謝志偉ㆍ52) 신문국장이다. 그는 입법위원 총선을 내달 12일에 앞둔 요즘 집권 민진당의 가장 인기 있는 선거 유세자이다.
셰 국장은 연일 민진당의 후보 지원 운동에 불려 나가 자작 랩을 무기로 구름같은 청중을 불러 모으고 있다. 그는 천수이볜(陳水扁) 총통과 함께 당내 인사 가운데 제일 많은 박수갈채와 환호를 받고 있다.
이번 총선에선 천 총통의 재임기간 연이은 실정으로 민진당의 약세가 뚜렷하지만 셰 국장이 유세에 등장해 분위기를 띄우면서 선거에 무관심한 '부동층' 젊은 유권자들이 다시 총선에 주의를 기울여 압승을 장담하던 최대 야당 국민당을 긴장시키고 있다.
얼마 전 타이베이에서 열린 민진당 선거 유세장에서 당과 정부 고위 당국자들의 판에 박힌 연설에 지루함을 느껴 졸던 청중들이 "다음 연사는 셰즈웨이 신문국장입니다"라는 사회자의 소개자가 있자 일제히 술렁였다.
강한 비트의 음악이 흐르는 가운데 댄서들과 어울려 무대에 오른 셰 국장은 랩을 부르기 시작했다. "대만은 보물섬/ 모두 도와 우리 입법위원을 전원 당선/ 총통도 당중앙도 있고/ 고향은 대만…"이라고 노래했다. 랩 제목은 <국민당은 돈 갚아라> 로 국민당이 독재시대에 차지한 막대한 자금을 국민에게 되돌려 달라는 가사로 돼 있다. 국민당은>
유세장의 분위기를 흥분의 도가니로 연출하는 셰 국장에 대해선 국민당 후보에 밀려 고전을 면치 못해온 민진당 후보들의 찬조 출연 요청이 쇄도하고 있다.
여당 입법위원 출마자들은 읍소작전까지 펼치며 셰 국장을 모시기에 급급하고 있는데, 지난주 그는 바쁜 업무에도 불구하고 4곳의 유세장을 다녀 왔고 이번 주에는 9곳에나 달려가 선거 지원을 했다.
국민당 진영에선 뜻하지 않은 '복병'을 만나 "정부 대변인이 집권당의 선거 유세에 나서는 것은 공무원법 위반"이라고 맹비난하고 있지만 셰 국장은 근무시간 외에 개인적으로 한다고 맞서며 중단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셰 국장은 대학교수 출신으로 독문학 박사이다. 천수이볜 정부에서 독일 주재 경제문화처 대표(대사)를 역임한 철저한 천 총통 지지자로 지난 5월 신문국장에 발탁됐다.
그는 자신이 선거 유세장에서 인기를 끄는 비결에 관해 "랩 가사의 경우 문학 작품과 시와 통하는 면이 많다. 선거 지원과 대학 강의도 거의 비슷하다. 모두 청중을 휘어잡아 함께 분위기를 '업(UP)'시키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셰 국장은 유세장 뿐만 아니라 때때로 각급 학교에도 나가 자신의 랩을 선보여 연예스타를 방불케 하는 학생들의 사인 공세를 받기도 하고 있다.
그는 무대에 모습을 비칠 때마다 복장과 장신구에도 신경을 써 20대 젊은이 못지 않게 치장하고 나와 청중들의 뜨거운 반응을 얻어내고 있다.
한성숙 기자 hans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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