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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전5기 홍수환의 링은 교실이다] (13.끝) 쓰러지고…다시서고 권투와 인생 '닮은꼴' 일어나! 챔프 최요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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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전5기 홍수환의 링은 교실이다] (13.끝) 쓰러지고…다시서고 권투와 인생 '닮은꼴' 일어나! 챔프 최요삼

입력
2008.01.02 0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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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권투열기가 시들해진 지도 오래 전의 일이다. 그리고 갈수록 프로 복서로 살기 어려운 현실이다. 이런 가운데 복싱의 전성기를 다시 찾겠다며 링에 올라 불굴의 투지를 발휘하다 쓰러진 후배 최요삼을 생각하면 안타깝기 짝이 없다.

서른 세 살의 적지않은 나이에도 한국 복싱의 인기를 되살리고 세계 챔피언에 다시 올라 후배들에게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겠다며 글러브를 벗지 않은 최요삼의 용기에 고개 숙여진다.

최요삼이 링에서 투혼을 발휘하던 순간 헥토르 카라스키야의 강펀치에 내가 네 번이나 넘어졌던 기억이 새삼스럽게 떠올랐다. '4전5기'에 성공하며 두 번째 세계 타이틀을 따냈듯이 최요삼도 반드시 병상에서 다시 일어나길 기대해 본다.

모 기업체 신입사원을 위한 연수 프로그램에 강연 나갔을 때의 일이다. 그날 나의 청중은 20대 초ㆍ중반의 젊은이들이었다. 갓 대학을 졸업한 사회 초년병들에게 '4전5기 신화'로 불리는 나의 권투시절 이야기를 들려주며 미래에 대한 용기와 도전의식을 갖게 해 달라는 게 강연을 준비한 주최측의 제안이었다.

그럴 때마다 내가 준비해 가는 게 있다. 바로 '4전5기'라는 당대의 신조어를 탄생시킨 카라스키야와의 경기장면을 담은 비디오테이프다. 어느덧 30년의 세월이 지난 까마득한 옛날 일이건만 요즘도 많은 사람들이 네 번이나 링 위에서 엎어졌던 내가 카라스키야를 쓰러뜨리는 장면에선 '와'하는 함성을 지르며 열광하곤 한다.

그날도 마찬가지였다. 대부분 처음엔 그저 왕년의 세계 챔피언 홍 아무개가 강연을 한다니까 호기심 반 의무감 반으로 내 이야기를 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막상 비디오테이프가 돌아가기 시작하자 여성들까지 눈 한번 깜빡이지 않고 화면을 주시했다.

그들은 내가 한 번 쓰러지고 두 번 넘어지고, 세 번 거꾸러지고, 계속해서 얻어맞아 얼굴이 온통 멍들고 일그러진 상태로 네 번이나 다운됐다가 죽을힘을 다해 일어서는 장면에선 자신도 모르게 동정과 연민으로 가득찬 탄성을 내뱉었다.

그리고 곧바로 내가 지른 한방에 저승사자같이 으르렁대던 상대가 무릎을 꿇는 장면에 이르러서는 강당이 떠나갈 듯 박수를 치며 환호했다.

이후 강연장 분위기는 확 달라졌다. 처음엔 눈을 마주치는 것조차 어색해 하던 그들은 내 주먹을 만져보고 싶어했고, 어떻게 그렇게 일방적으로 얻어맞기만 하다가 녹초가 된 상황에서도 다시 일어나 싸울 생각을 했는지, 복싱이라는 게 맞고 때려야 하는 거친 운동인데 왜 하필 그 길을 선택했는지 등의 질문을 해 대며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강연이 끝나고 사인을 해 주고 있었는데 "어, 김득구 선수 아니었어요?"라며 한 여성이 메모지에 적힌 내 이름을 보고 의아하다는 듯이 물어 강연장이 한바탕 웃음바다가 되기도 했다. 아마 당시 김득구 선수의 일생을 그린 '챔피언'이란 영화가 개봉됐기 때문일 것이다.

실제로 요즘 젊은이들에게 나는 잊혀진 인물이 아니라 전혀 생소한 인물일 수도 있다. 어디 홍수환이라는 이름뿐이겠는가. 권투열기가 시들해진 한국 사회에서 복서들이 설 자리는 그만큼 좁아진 게 사실이다.

나는 지난 10여년 동안 전국 각지의 기업체 연수원을 수없이 드나들면서 비로소 그들이 내게서 무얼 원하는지 알게 되었다.

사람들은 네 번이나 쓰러졌다가 다섯 번째 다시 일어서서 죽기살기로 승리를 일궈낸 30년 전 어느 복서의 이야기를 통해 일종의 대리 만족 또는 인생의 대리전을 원하고 있었던 것이다.

사실 권투라는 게 알고 보면 인생의 축소판이다. 그 좁은 사각의 링 위에 나는 청춘을 바쳤다. 거기에는 홍수환이라는 한 인간의 도전과 야망의 기록이 있고 실패와 성공, 좌절과 극복의 드라마가 있다. 청중에겐 그가 홍수환이든 김득구든 최요삼이든 상관이 없다.

단지 그들은 이름없는 선수가 세계 챔피언에 오르기까지의 파란만장한 여정을 통해 나름의 교훈을 얻게 되는 건지도 모른다. 이런 측면에서라도 최요삼은 반드시 다시 일어나야 한다. 최요삼의 쾌유를 빈다.

그리고 그동안 '4전5기 홍수환의 링은 교실이다' 연재에 성원을 보내주신 한국일보 독자여러분께 감사드린다. 개인적으로도 자신을 되돌아 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독자여러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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