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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전임자 존중 전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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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전임자 존중 전통

입력
2008.01.02 0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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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대 대선 후 김대중 당선자는 취임까지 김영삼 대통령을 두 번 만났다. 두 사람은 선거 후 이틀 만에 청와대 오찬 회동을 갖고 6개항의 합의문을 발표했다.

정국 안정과 국정 수행에 차질이 없도록 공동 노력하며 긴급한 경제상황에 대처하기 위해 양측 동수로 12인 위원회를 운영한다는 등의 내용이었다.

차남 구속과 환란으로 정치적 식물인간 상태였던 YS가 DJ에게 사실상 국정운영을 넘긴 셈이었다. 9일 뒤인 12월29일에는 청와대에서 부부동반으로 저녁식사를 함께 했는데 30년 정치동지로서의 축하와 위로의 덕담이 오갔다고 한다.

■ 2002년 노무현 당선자와 김대중 대통령의 회동은 대선 후 나흘 만에 이뤄졌다. DJ는 오찬 회동 약속시간 5분 전에 청와대 본관 현관에 나와 노 당선자를 기다렸고 엘리베이터에도 당선자를 먼저 타게 하는 등 전례 없는 파격 예우를 했다. 세 아들 비리 의혹으로 크게 상심해 있던 DJ는 정권 재창출에 대한 고마움을 그리 표시했다.

북한이 핵재처리시설 재가동에 들어가는 등 위기가 고조되는 상황에서 햇볕정책을 계승하는 노 당선자에 대한 믿음의 표시이기도 했다. 두 사람은 수행인사를 물리고 90분간이나 긴밀한 대화를 나눴다.

■ 대통령과 당선자의 회동은 권력 인수ㆍ인계를 원활히 하기 위해서지만 전임자가 후임자에게 퇴임 이후에 대한 협조를 당부하는 자리이기도 하다. YS는 환란 책임과 구속된 차남의 사면복권을 언급했을 법도 하다. 하지만 DJ는 김현철씨 사면복권을 위해 법 논리를 뛰어넘지 못했고, 환란청문회 개최로 YS를 궁지로 몰아넣은 셈이 됐다.

노무현 대통령은 한나라당이 밀어붙인 대북송금사건 특검법에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아 DJ를 낙담케 했다. 이유가 많겠지만 전임 정권을 딛고 일어서야 하는 후임 정권의 정치적 필요성도 작용했을 것이다.

■ 지난 주말 이명박 당선자와 노무현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만찬을 함께 했다. 정치적으로 특별한 인연이 없는 두 사람인지라 다소 의례적이고 서먹한 만남이었던 것 같다. 노 대통령의 성향이나 수평적 정권교체의 긴장 등을 감안할 때 국정 관련 외에 특별한 협조요청이 있었을 것 같지는 않다.

이 당선자는 며칠 전 문재인 청와대비서실장이 당선축하 난을 들고 찾아왔을 때 전임자 존중의 전통을 만들어 가야 할 때라고 말한 바 있다. 이날 만찬에서 어떤 속 깊은 대화가 오갔는지 알 수 없으나 이명박 정부에서는 전임자 존중의 전통이 확립되었으면 좋겠다.

이계성 논설위원 wks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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