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잉복지·경쟁부재로 성장정체 겪자 佛·獨등 국민 스스로 우파정부 선택성장·분배 균형위해 실용주의 실험
유럽은 지금 수술중이다. 병명은 성장정체증. 오랜 과잉복지와 경쟁부재로 인해 성장세포가 죽어버린 것이다.
메스의 날은 날카롭다. 과도한 복지를 축소하고, 비대해진 정부와 공공부문을 감축한다. 아울러 경쟁을 통해 일하는 사람과 일하지 않는 사람, 일하는 사람 중에서도 더 많은 성과를 내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을 차별화한다. 즉 파이 배급량을 줄이고 더욱이 차등 배분토록 함으로써, 더 많은 파이를 차지하기 위한 경쟁을 유발시켜 결국 파이생산량을 늘려간다는 전략이다.
수술을 선택한 것은 국민들이었다. 최근 1~2년 사이 선거를 통해 도미노식으로 우파(혹은 중도우파) 정권이 집권했다. 프랑스가 그렇고, 스웨덴이 그렇고, 독일이 그렇다. 국민이 우파 정부를 선택했다는 것은 스스로가 분에 넘치는 복지를 반납하고, 가혹한 경쟁시스템으로의 편입을 자원했다는 의미다. 왜? “이대로는 안되겠다”는 위기의식 때문이었다.
제자리 걸음이나 다름없는 성장률. 두자릿 수를 넘나드는 실업률. 늘어나는 노인과 빈둥대는 젊은 층. 주기적으로 반복되는 파업.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재정적자. 가정경제로 친다면 이미 오래 전에 파산했어야 옳다. 뒤늦게 나마 사라진 성장DNA를 복원하기 위해, 유럽 각국이 분주해졌다.
스벤 호르트 스웨덴 스톡홀름남대학 교수는 “경제가 성장하지 못한다면 복지와 분배는 껍데기만 남을 수 있다”며 “세계화의 도전에 맞서기 위해 유럽을 비롯한 주요 선진국들이 변화를 추구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렇다고 기존 시스템을 폐기하는 것은 아니다. 분배를 버리고 성장일변도로 가는 것도 아니고, 맹목적 작은 정부나 19세기식 자유방임주의를 지향하는 것도 아니다. 성장ㆍ분배의 균형, 정부개입과 시장자율의 균형에 대한 모색이다. 보다 생산적인, 보다 효율적인 경제를 위해 시스템을 ‘리모델링’하는 실용주의 노선인 것이다.
최근 유럽의 실용주의 실험은 종래의 좌ㆍ우 통념을 넘나든다는 점에서 더욱 특징적이다. 독일 앙겔라 메르켈 총리의 개혁도 사실은 사민당 게르하르트 슈뢰더 전 총리의 비전을 이어받은 것이고, 영국 노동당 토니 블레어-고든 브라운 전ㆍ현 총리의 경제정책은 신자유주의로 대변되는 ‘대처리즘’의 연장선상에 있다.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의 강력한 개혁 조치나, 프레드릭 레인펠트 스웨덴 총리의 복지모델 대수술도 ‘인사탕평책’(프랑스) ‘정책공조’(스웨덴) 등을 통한 ‘좌파 끌어안기’가 없었다면 불가능했다는 평가다. 미카엘 브루다 독일 훔버트대학 교수는 “만약 성장이 복지와 분배를 견인하지 못하고 양극화를 조장한다면, 언제든 여론은 다시 돌아설 수 있다”고 강조했다.
새로 출범할 ‘이명박정부’도 실용주의를 천명하고 있다. 그 출발은 좌ㆍ우의 경계를 넘어 효율적이면서도 균형잡힌 경제로 시스템을 리모델링하는 것이다. 신년을 맞아 한국일보는 ‘이명박정부’에 좋은 참고서가 될 유럽각국의 경제개혁 실험을 소개한다.
베를린ㆍ스톡홀름=이영태기자 ytlee@hk.co.kr파리ㆍ런던=문준모기자 moomj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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