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19일 베이징(北京)시내 창청(長城) 호텔. 톈진(天津) 남쪽 인구 60만의 소도시 허베이(河北) 창저우(滄州)시가 연 무역 간담회에는 한국을 비롯한 50여개국 100여명의 인사들이 참석해 투자여건을 확인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중국 투자의 매력을 재확인하는 자리였다.
같은 날 뉴욕 월 스트리트. 중국 국부펀드인 중국투자공사(CIC)가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사태로 막대한 손해를 본 세계적 투자은행 모건 스탠리에 50억 달러를 긴급 지원했다. CIC가 모건 스탠리 지분 9.9%를 취득, 제2대 주주로 당당히 월 스트리트에 입성했음을 전세계에 알리는 순간이었다.
중국이 지칠 줄 모르는 파워를 분출하고 있다. 2007년 중국은 11%가 넘는 고성장을 이룩했다. 2008년에도 고성장을 이어가 중국의 해로 기록될 것이라고 미 시사주간 뉴스위크는 전망했다. 특히 2008년은 중국이 개혁 개방을 추구한 지 30주년을 맞는 해이다.
1978년 덩샤오핑(鄧小平)의 주창 이래 개혁 개방의 길을 쉼 없이 달려온 중국은 다시 신발 끝을 조이면서 향후 30년을 구상하고 있다. 지난해 10월 중국 공산당 대회에서 후진타오(胡錦濤) 국가주석이 11차례 중화민족의 부흥을 외쳤던 것은 중국의 자신감을 세계에 알리는 선언이었다. 때맞춰 열리는 베이징 올림픽은 개혁 개방 30주년을 기념하는 축제의 정점을 이룰 것이다.
이제 세계는 개방 30년을 맞는 중국 경제를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 볼 것을 요구받고 있다. 선전, 톈진 빈하이(濱海)신구, 상하이(上海) 푸동(浦東) 특구를 둘러보고 중국의 변모와 발전을 말하는 것은 구태의연하다. 중국은 눈에 보이는 힘 보다 눈에 보이지 않는 저력이 훨씬 많은 나라이기 때문이다.
사회주의 국가 틀을 유지하면서 시장경제를 추구하는 새로운 실험의 과정에서 개혁 개방 30년은 중국에 가공할 힘과 성장 동력을 주기 시작했다. 개혁 개방 초기엔 경제특구도시, 외국자본의 직접투자(FDI)유치, 가공무역이 중국의 번영을 이끌었으나 이제는 새로운 동력이 중국의 비상을 준비하고 있다.
중국 대륙의 작은 점(點)에 불과했던 경제특구는 경제권이라는 면(面)으로 발전했다. 외국자본은 중국 성장의 젖줄이었지만 이제는 중국 자본이 해외투자와 기업 사냥에 나서고 있다. 가공무역만으로는 더 이상 중국에서 버틸 수 없다. 오직 기술력과 이노베이션 능력을 가진 기업만이 살아남을 수 있는 환경으로 바뀐 지 오래다.
무역규모가 2조 달러에 이르면서 전통적인 산업발전 단계를 따를 필요가 없어졌다. 중국은 이미 대형 항공기 제조, 항공우주 등 첨단 분야에 도전하는 비약 성장 단계로 접어들었다. 1인당 국민소득은 2,000 달러를 갓 넘겼지만 달나라로 우주선을 보내고 중형 여객기를 상용함으로써 첨단 산업 성장의 서막을 알렸다.
경제권 내 통합은 점점 강화되고 있다. 인구 700만 명의 선전 특구를 세계적 금융허브 홍콩과 2020년까지 통합, 뉴욕 다음의 국제적인 금융허브로 도약하겠다는 계획이 나왔다. 이 계획이 성사되면 싱가포르, 도쿄, 서울 등 아시아 경쟁 지역들은 홍콩-선전을 따라잡기 어려워질 것이다.
또 랴오닝(遼寧), 허베이(河北), 허난(河南) 쓰촨(四川) 저장(浙江) 광둥(廣東) 장쑤(江蘇)성, 상하이, 베이징은 각각 GDP 1조 위안(125조원)을 넘어서는 ‘지방대국’으로 부상했다. 덩샤오핑이 예연했던 대로 점-선-면으로 확장되는 발전전략이 현실화되고 있는 셈이다.
중국은 이제 1980년대 문어발 식으로 세계 기업의 삼켰던 일본을 닮아가고 있다. 2007년은 자본 측면에서 매우 상징적이었다. 해외 투자 중국자본이 중국투자 외국자본을 앞지른 첫 해였기 때문이다. 들어온 외국자본은 251억 달러였지만 나간 중국자본은 301억원에 달했다. 뒤떨어진 기술력과 경영능력을 한꺼번에 따라잡기 위해 해외 기업을 통째로 인수하는 상황이 가속화한다면 세계 일류 중국 기업의 탄생은 시간 문제이다.
특히 중국은 해외 자원을 확보하는 데 자본을 집중적으로 투자하고 있다. 지속 가능한 성장을 염두에 둔 장기적 전력이다. 유럽이 아프리카를 원조 대상으로 여기면서 부담스럽게 여길 때 중국은 기회를 잡았다.
중국은 아프리카 각국에 2006년까지 116억 달러를 투자하면서 원유 등 에너지를 확보하는 데 총력을 쏟고 있다. 수입 원유의 3분의 1이상을 아프리카에서 들여오는 중국은 세계에서 중동산 원유 의존도가 가장 낮은 나라 중 하나가 됐다.
중국 경제와 불가분의 관계를 갖고 있는 세계 각국은 새로운 대 중국 전략을 준비해야 한다. 주중 한국 기업인들은 상품 수출이외에 중국 기업합병, 중국 금융시장 진출을 통해 중국 시장을 최대한 활용하는 지혜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장윈링(張蘊岭) 중국 사회과학원 국제연구부 주임(교수)은 “중국의 경제 부흥은 정책의 일관성에서 나왔다”고 말했다. 한국이 장기적인 대(對) 중국 계획을 짜고 일관성 있게 밀어붙이는 전략을 세워야 할 때라는 조언이다.
베이징=이영섭 특파원 younglee@hk.co.kr
■ "中 미래경제 아킬레스건 될수도"
지난달 중국 청년보는 물의 온도가 서서히 올라가면 개구리가 고통조차 느끼지 못하고 죽는다는 속담을 인용하면서 중국 경제가 같은 운명을 맞을 수 있다는 분석 기사를 실었다.
이 신문은 중국 내ㆍ외자 기업들이 인건비 상승을 이유로 베트남과 인도로 발길을 옮기려는 상황을 전하면서 값싼 노동력과 낮은 원가로 대표되는 중국의 비교 우위가 상실하고 있지만 새로운 비교 우위 항목은 뚜렷하게 나타나지 않고 있다고 진단했다.
지난해 중국은 5%에 가까운 물가 상승률을 기록하면서 임금이 치솟았고 올해부터 노동자들의 권익을 신장시킨 노동계약법을 시행한다. 하지만 인건비 상승에 따른 원가 상승이 생산성 향상으로 이어질지는 미지수이다.
단적으로 개혁ㆍ개방 30년이 됐지만 중국은 한국의 삼성과 현대자동차와 같은 세계 일류기업을 갖고 있지 못하다. 낮은 생산성에 머물러 있다는 단적인 증거이다. 여전히 양의 경제이지, 질의 경제는 아니다. 과거 중국 내 내ㆍ외자 기업이 생산비에서 인건비가 차지하는 비중은 6~10%였다. 최근 이 비중은 10%를 훨씬 넘어서고 있다. 기업 내 이노베이션 역시 지지부진하기만 하다.
이 신문은 “우리가 막 느끼기 시작한 진통(陣痛)은 위기이자 기회”라며 “노동생산성과 직결된 기업의 기술향상과 혁신만이 중국 경제의 미래를 보장할 수 있다”고 결론지었다. 중국 기업들이 질적으로 세계 일류로 성장하지 못할 때 중국의 성장은 멈춰 설 수 있다는 경고이다.
베이징=이영섭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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