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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악산 비밀정원' 백사실의 가을과 겨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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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악산 비밀정원' 백사실의 가을과 겨울

입력
2008.01.02 0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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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하늘이 높아진 만큼 햇살이 따갑다. 가을이다. 단풍은 오래 전부터 시작되었다 . 점이 모여 선이 되고, 선이 합쳐 면이 되고, 면이 겹쳐 입체가 되듯, 숲의 가을은 그렇게 찾아왔다.

가지마다 빛이 다르고, 잎맥 따라 색깔이 나뉜다. 단풍이라고 모두 붉은 것도 아닌데 숲은 절묘하게 어우러져 울긋불긋 가을색을 빚었다. 눈뜨기도 힘든 찬란한 시월의 빛이 숲에 부서진다. 녹색 잎은 하얗게 빛나고 때로는 검은 그림자로 떨어진다. 계곡에 빠진 태양은 물결 따라 노닐며 물속과 그늘에도 생명의 빛을 전한다.

11월이 되자 낙엽이 온 숲을 뒤덮었다. 떨어진 잎들은 엇갈려 겹치며 서로를 붙들고, 죽은 가지에 눌려 바람에 저항한다. 땅에 떨어진 낙엽은 거름이 되고, 물에 떨어진 잎은 수서생물의 은신처와 먹이가 된다.

잎과 열매는 땅에 떨어진 순간부터 한데 어우러져 창연(蒼然)한 가을이 되었다. 잘남과 못남이 없이 처연히 몸을 썩혀 순환의 고리로 돌아간다.

그 동안 아이들의 소풍길엔 바스락거리는 낙엽 소리가 함께했고, 가을 등산객의 가슴엔 울긋불긋 단풍이 물들었다. 떨어지는 낙엽을 보고 눈물어린 시를 쓰고, 고운 단풍을 보고 붉게 타는 마음을 카메라에 담는다. 가을의 한 가운데서 숲을 찾은 사람들은 단풍나무 한 그루가 주는 기쁨에 충분히 행복한 하루를 보냈다.

겨울나무는 서로 다른 수피(樹皮)로 자기 색깔을 한 층 더 선명히 드러낸다. 종류와 연령만큼 다양한 나무껍질은 삶의 이력을 고스란히 담은 한 나무의 역사이다. 앙상한 가지는 하늘을 캔버스 삼아 자유롭게 그림을 그린다.

서로 얽히고 설켜 얼핏 무질서해 보이는 하늘그림엔 생존의 지혜가 담겨 있다. 숲에 누워 하늘을 보면 나무는 용케도 남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고 태양과 바람의 길을 만들었다. 인류가 출현하기 오래 전부터 이 땅에 뿌리내린 나무는, 독점이 아니라 다양성과 공존만이 지속 가능한 삶을 사는 유일한 길임을 체득한 듯하다.

인간사만큼 요란하진 않지만 백사실 숲도 다사다난했던 한해를 보내고, 자연의 시간에 충실한 나무는 오래 전에 새해를 맞을 준비를 끝냈다. 꽃이 지고 잎 떨어진 자리에는 어김없이 꽃눈과 잎눈을 만들어 놓고 긴 겨울잠 속으로 빠져 들었다. 매서운 추위만 잘 견디면 화사한 꽃과 연초록 잎으로 다시 태어날 것이다. 새해 새봄을 위해 당신은 어떤 준비를 하고 있냐고 숲이 묻는다.

■ 느린 만큼 보이는 숲, 북악산 백사실 8개월의 기록(9월 21일자)에 이어 백사실의 가을과 겨울 풍경을 화보로 엮었습니다. 한국일보 포토온라인저널(http://photoon.hankooki.com)에서 더 많은 사진을 볼 수 있습니다.

최흥수 기자 choisso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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