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8년 1월 13일. 김대중 대통령 당선자는 4대그룹 총수들을 국회 귀빈식당으로 호출했다.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을 맡은 고 최종현 SK 회장이 "기업인이 죄인 중의 죄인입니다"라고 입을 뗐다. 손병두 당시 전경련 부회장은 "겸양의 표현이었다"고 했지만, 김대중 당선자는 환란의 책임을 물어 대기업 구조조정과 전문경영인 체제를 요구했다.
2003년 2월 10일. 손길승 신임 전경련 회장이 노무현 당선자를 집무실로 찾아가 70도의 큰절을 올리며 "송구스럽다"고 했다. 전경련 상무가 인수위의 재벌개혁론을 사회주의 정책이라고 비난해 물의를 빚은 데 대해 용서를 구한 것이다.
지난 10년 간 재계는 당선자나 대통령을 찾아가 잘못을 빌거나, 면담을 요청해 간신히 '용안'을 뵐 수 있었다. 하지만 2007년 12월 28일에는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가 재계를 찾아간다.
그것도 당선 9일 만에 갖는 첫 외부행사가 기업인들과의 만남이다. 역대 정부에서 보기 힘들었던 당선자 행보에 재계는 물론 일반 국민들의 시선이 집중될 수밖에 없다.
이 당선자는 이날 오전 11시 서울 여의도 전경련 회관에서 주요 20대그룹 총수 등과 대화를 나눈다. 이 당선자는 경제단체의 신년 인사회에도 잇따라 참석할 예정이다.
누가 참석하나
당선자의 이례적 행보에 화답하듯 전경련 회장단 회의에 수년 간 발길을 끊었던 대기업 총수들까지 모두 참석한다. 참석자 선정은 인수위의 초청 형식으로 이뤄졌다. 이건희 삼성 회장, 정몽구 현대ㆍ기아차 회장, 구본무 LG 회장, 최태원 SK 회장 등 4대그룹 총수는 모두 나온다.
이건희 회장은 삼성 비자금 사건에 대한 비난 여론을 감안해 불참을 통보했다가 나중에 합류했다. 구본무 회장은 1999년 빅딜로 LG반도체를 빼앗기고 전경련에 발을 들여놓지 않은 지 8년 만에 회동한다.
전경련 회장단에 속한 박삼구 금호아시아나 회장, 조양호 한진 회장, 현재현 동양 회장, 이구택 포스코 회장, 김승연 한화 회장, 회장단이 아닌 허창수 GS 회장, 구학서 신세계 부회장, 장세주 동국제강 회장도 참석한다. 김준기 동부 회장, 이웅열 코오롱 회장, 신동빈 롯데 부회장은 해외출장 중이어서 참석이 어려운 상황이다.
당선자 측에선 이경숙 인수 위원장을 비롯해 김형오 부위원장, 사공일 국가경쟁력특위 공동위원장, 강만수 경제1분과위 간사, 최경환 경제2분과위 간사 등이 자리를 함께 한다.
왜 만나나
재계는 이 당선자가 경제 살리기를 위한 1차 타깃을 대기업 총수로 삼았다고 본다. 일자리 만들기 등 경제공약을 위해선 우선 투자가 이뤄져야 하는데, 대기업 참여 없이 투자활성화가 어렵다고 판단했다는 것이다.
전경련 한 인사는 "투자가 어찌하면 되는지 잘 알고 있는 이 당선자가 정공법을 선택한 것 같다"고 말했다. 이동관 인수위 대변인은 "돈을 움켜쥐고 있던 기업들에게 벌써 투자마인드가 살아나는 조짐이 있다"면서 "그러나 이 당선자가 직접 투자 전도사로 나설 필요가 있다는 지적에 따라 간담회를 준비했다"고 설명했다.
구체적으로 이 당선자는 친기업 환경을 만드는 정책과 각종 규제완화 방침을 설명하고, 투자 장애 요인에 대해 의견을 교환할 것으로 보인다. 이를 통해 지난 5년 간 반기업 정서에 시달려온 기업인들에게 투자활성화를 적극 요청할 계획이다.
무슨 선물 나올까
재계는 이 당선자의 경제공약 중 특히 대기업의 현안인 출자총액제한제도 폐지를 비롯한 금산분리 완화, 노동 관련 법규 개정 등의 '선물 보따리'를 기대하고 있다. 또 대기업 규제 이외에 수도권과 토지, 서비스 부문 등 4대 핵심규제의 폐지에 대한 긍정적인 답변도 듣고 싶어 한다.
대신 재계는 투자 확대 등으로 이 당선자의 주문에 화답할 것으로 예상된다. 주호영 당선자 대변인은 "기업들이 내년에 20조~30조원의 투자여력이 있는데, 이를 투자해달라는 뜻을 전달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전경련 측은 이 만한 돈이 투자되면 우리나라 경제성장률이 기존보다 2%포인트 이상 올라, 이 당선자의 공약인 7% 수준을 기록할 것으로 예상했다.
이태규 기자 tg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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