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나 했더니 역시나다." 진부한 표현이지만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가 당선 후 취한 첫 번째 중요한 결정인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위원장 인선을 보면서 이 진부한 표현을 다시 한 번 쓰지 않을 수 없다. 그래 첫 인사라는 것이 그 많은 사람들 중에서 국보위 위원이란 말인가?
이것이 바로 이 당선자가 대한민국을 이끌고 가려고 하는 이명박식 실용주의의 참 모습인가? 박근혜 식의 '골보수'와 구별되는 이명박식 '열린 보수'라는 것이 국보위 시절의 어두운 기억으로 우리를 이끌어가는 것이란 말인가? 답답하기만 하다.
■ 왜 하필 그가 인수위원장인가
백배, 만배 양보해 유신과 5공에 협력한 인사들은 그런대로 봐줄 수 있다. 그러나 국보위만은 정말 '아니올시오'다. 국보위가 어떤 기관이었나? 전두환 일당이 1980년 봄 광주에서 수백명의 양민을 처참하게 학살한 뒤 국회마저 해산하고 양민들의 피바다 위에 세운 초헌법적인 기구가 바로 국보위다.
지난 선거기간에 이 당선자는 광주에 내려가 별 달콤한 이야기를 다했다. 그러나 당선되자마자 국보위 위원 출신인 이경숙 숙명여대 총장을 인수위 위원장으로 임명했다.
이는 선거가 끝나자마자 광주의 뺨을 때리고 광주에 선전포고를 한 것에 다름 아니다. 이번 대선에서 광주에서 표가 별로 나오지 않은 것에 분풀이라도 하려는 것이 아니라면 이럴 수는 없다.
특히 주목할 것은 이 문제가 이 당선자가 이 총장을 인수위 위원장에 임명한 뒤에 터져 나온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즉 이 당선자는 이미 이 문제를 잘 알고 있었고, 내부에서 이를 이유로 이 총장의 임명을 반대하는 의견들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를 무시하고 인사를 단행했다. 이 당선자가 반대에도 불구하고 이 총장에 대한 인사를 강행한 이유를 알 수 없다.
일부 언론에서 지적하듯이 그것이 이 당선자와 이총장 간의 소망교회에서 맺어진 인연 때문인지 아니면 이 당선자가 성공적인 대학 CEO로서 이 총장이 갖는 능력을 높이 평가했기 때문인지 알 수 없다. 그러나 조금이라도 제대로 된 역사의식을 갖고 있다면 그 어느 것도 국보위라는 역사적 행적을 능가할 수는 없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그 많고도 많은 인사들 중에 왜 하필 국보위 위원인가? 그리 인물이 없는가? 허긴 그 많은 재산을 갖고도 몇 푼을 더 벌기 위해 자식들을 자기 회사에 위장 취직시키는 수준의 공인의식을 가진 이 당선자에게 국보위에 대한 역사의식을 요구하는 것부터가 애당초 무리인지도 모른다.
역사의식 못지않게 심각한 문제는 오만이다. 노무현정부와 마찬가지로 이 당선자는 인사에 있어서 벌써부터 주위의 비판을 무시하고 "내가 좋으면 그만"이라는 오만을 보이고 있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이경숙 인수위원장의 반응이다. 이 당선자는 그렇다고 치더라도 이 위원장은 최소한 과거의 행적에 대해 국민에게 사과를 하고 용서를 빌어야 했다.
그것이 아니라 "27년 전 일인데 열심히 일 하겠다"니 답답하기만 하다. 말 한 마디에 천냥 빚을 갚는다고 했다. 이 위원장의 표현대로 27년 일이니 만큼 이에 대해 진솔하게 사과를 했다면 눈을 질끈 감고 봐줄 수도 있다.
■ 본인 반응도 이해하기 어려워
그러나 "오래 전 일인데 잊어버리지 왜 자꾸 시비를 거느냐"는 조이니 화가 나지 않을 수 없다. 허긴 이 위원장은 이전에도 자신의 국보위 경력, 그리고 이에 기초한 민정당 전국구 국회의원 경력에 대해 부끄러워하는 것이 아니라 이를 통해 만든 인맥이 학교의 해묵은 문제들을 해결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는 점에서 감사하게 생각한다고 말했던 사람이다.
그러니 무얼 기대하겠는가? 그 당선자에 그 인수위원장이며 역시 유유상종이다. 모두들 신 국보위 시대에 온 것을 축하하며, 국보위 만만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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