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희 지음 / 삶이 보이는 창 발행ㆍ134쪽ㆍ1만1,000원
이발소 주인의 손찌검과 온갖 허드렛일에 시달리면서도 세끼 밥은 굶지않는 것이 황송했던 소년은 손에 물 마를 날 없던 견습기를 거쳐 이발사 자격증을 따고 결혼해 세 자녀를 대학공부 시키기까지 반세기를 잠시도 가위를 놓지 않았다. 대구 중구 정안이용실을 운영하는 문동식(68)씨다.
화려한 미용실과 남성전용 헤어클럽의 공세로 이용실의 생존이 위태로웠던 시기에도 고육지책으로 이발비를 4,000원으로 내리면서 꿋꿋이 지하셋방을 지켰고, 그마저 ‘밥상에 둘러앉은 한 식구같은’ 단골들에게 손 내밀기가 미안해 출입구 앞에 돈 통을 만들어 놓고 내는 만큼 받는다. 이발을 마친 손님이 문을 나서면서 ‘휘휘~’ 휘파람을 날려줄 때 가장 행복하다.
그는 손님들이 있었기에 자신이 존재할 수 있었고, 그들은 자신의 훌륭한 스승이었다고 말한다. “왜 그런 줄 알아? 스타일을 만들어주는 사람은 모델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야.”(‘가위질 반세기’에서)
<사라져가는 수공업자, 우리 시대의 장인들> 은 문씨처럼 평생을 수공업에 종사한 사람들의 이야기다. 금은세공사 김광주, 제과제빵사 이학철, 선박수리공 황일천, 철구조물 제작사 김기용, 자전거 수리공 임병원씨가 주인공이다. 그들은 어쩌면 무한경쟁의 원칙이 지배하는 신자유주의 경제시대에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사람들이다. 우후죽순 세를 넓혀가는 기업형 베이커리가 하지 못하는 일을 하겠다며 하루종일 공갈빵을 굽는 제빵사나 시대의 흐름속에 배목수에서 선박수리공으로 전락하면서도 용접기를 손에서 놓지 못하는 뱃사람. 우직한 손놀림으로 정직하게 돈을 벌고, 그 세월이 쌓여 어느덧 일과 몸이 하나가 됐으되 삶은 척박할 수 밖에 없다. 사라져가는>
책 출간을 기획한 대구민예총은 ‘평범한 삶이지만 그 속에서 노동과 인간정신의 위대함을 실천하는 사람들에게 따뜻한 헌사를 바치고 싶다’고 서문에 기획의도를 밝히고 있다. 시인이자 르뽀 작가로 활동하는 박영희씨가 인터뷰해 쓴 글과, 다큐멘터리 사진작가인 조성기 강제욱 안성용 안중훈 정윤제 장석주 등 6명이 작업한 사진들이 함께 실렸다.
이성희 기자 summe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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