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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운하냐 실크로드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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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운하냐 실크로드냐

입력
2008.01.02 0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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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를 시작하면서 세계 지도를 펴 본다. 지도는 꿈을 꿀 수 있는 공간이다. 가 본 길을 더듬어보고, 막연하게나마 아직 가 보지 못한 길의 기대를 품어보는 것도 신년을 맞는 한 방법이다. 한 사람의 얼굴에 그 삶의 자취가 새겨지듯, 세계 지도에는 역사의 흔적이 그대로 주름져 있다.

우선 유럽 지도에 눈길이 간다. 지난 연말 대통령 선거 결과로 온 나라가 떠들썩했던 한국에서 조용히 묻혀 지나간 국제뉴스가 하나 떠오른다. '유럽이 완전히 통했다'는 뉴스다.

2007년 12월 21일 0시를 기해 유럽 24개국의 국경이 완전히 개방된 것이다. 폴란드, 체코, 슬로바키아, 헝가리, 슬로베니아, 그리고 발트 3국(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등 동유럽 8개국과 지중해의 섬나라인 몰타 등 2004년 유럽연합에 가입한 9개 나라가 회원국들 간의 자유로운 통행을 보장하는 쉥겐조약에 따라 이날 국경을 개방했다.

이들 9개 나라와 기존 회원국 15개 나라의 국민들은 여권 검사 없이 서로 오갈 수 있게 됐다. 한국의 관광객도 이들 중 한 나라에서만 비자를 받으면 유럽 전역을 어디든 맘대로 여행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동쪽으로 눈길을 옮겨본다. 이스탄불이 보인다. 유럽과 아시아 두 대륙을 통하게 하는 유일한 도시, 동양과 서양의 문명이 만나 융화된 이스탄불은 동서 150km 남북 50km에 1,200만명이 사는 거대한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문화유산이다. 이스탄불은 고대에는 중국 시안에서 출발했던 육상 실크로드의 서쪽 종착지였고, 현대에는 파리에서 출발해 유럽을 가로질렀던 오리엔트 특급열차의 종착역이었다. 유럽과 아시아는 물론, 기를 쓰고 싸우고 있는 기독교와 이슬람 문명도 이 도시를 통해 만난다.

이스탄불에서 기나긴 실크로드를 거슬러 따라가보면 그 끝에 한반도가 있다. 그렇게 지도를 펼쳐놓고 보면 한국은 영락없는 섬나라다. 유럽과 아시아를 잇는 육로는 한반도에서 끊어진다. 서쪽으로, 아시아 대륙과 유럽으로 가려고 해도 갈 수가 없다. 신화시대부터 국경을 찢어발기고 갈라붙이면서 땅따먹기하던 유럽도 이제는 다 걸어서 갈 수 있게 통했다는데, 한국 사람들은 비행기나 배를 타고 나가서야 비로소, 육로로 이웃나라들로 갈 수 있다.

"노무현이 대통령으로서 실패한 가장 큰 이유? 다른 것 다 제쳐놓고 그가 대통령 되기 전에 단 한 번도 미국을 가 보지 않았다는 사실, 그거 하나만으로도 그의 실패는 예정됐던 거야." 얼마 전 송년회 자리에서 한 지인이 이렇게 단정하는 말을 듣고 그럴싸하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었다. 물론 그의 말은 단지 미국이 아니라, 세계를 봐야 하는 지도자의 자질을 이야기한 것이다.

이명박 정부는 어떨까. 그의 핵심 공약인 한반도 대운하가 만일 현실화한다면 세계 지도에서 어떤 자취를 그릴 수 있을까. 우리 발 밑으로 땅 파 들어가는 토목공사가 한국 경제를 다시 살리는 최선책일까, 아니면 섬나라 같은 한국을 유라시아와 연결시키는 길부터 다시 이어 나가서 세계와 통하게 하는 것이 선진화일까.

대통령 당선자의 취임까지는 아직 두 달이 남았다. 대운하는 갈라진 한국사회의 좌우가 구분 없이 참여하는 충분한 토론이 있어야 한다. 프랑스의 실용 우파라는 사르코지 대통령은 프랑스 성장촉진위원회 위원장에 '낭만적 사회주의자'로 불리는 좌파 학자 자크 아탈리를 기용했다. 대운하는 청계천이 아니다.

하종오 문화부 부장대우 joh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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