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발의 총성과 귀청을 찢는 폭발음은 베나지르 부토 전 총리의 뒷목뿐 아니라 파키스탄 국민의 심장도 관통했다.
페르베즈 무샤라프 대통령을 증오하면서도 비상사태 선포 당시 변호사들의 거리시위에 동참하지 않았던 파키스탄 국민이었지만, 부토의 피살은 정권에 대한 격렬한 분노를 일으키기에 충분했다.
무샤라프 대통령이 긴급회의를 열어 테러행위를 비난하고 3일 동안의 애도 기간을 선포했으나 소요 사태가 계속되면서 파키스탄 정국이 내전으로 격화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까지 나오고 있다.
■ 폭력사태 전국 확산…군부대 투입
부토 전 총리 암살 이틀째인 28일 부토의 고향인 남부 신드 주(州)를 중심으로 소요가 확산되면서 급기야 보안군이 시위대를 향해 발포했다.
신드 주 당국이 지역 보안군에 발포권을 부여한 후 하이데라바드에서 보안군이 처음 시위대를 향해 발포, 5명이 다쳤다. 보안군 관계자는 로이터 통신에 "시위대의 폭력이 격화돼 발포했으나 시위대를 해산시키지는 못했다"고 말했다.
폭력사태가 확산되자 신드 주 정부가 군부대에 도움을 요청, 카라치 하이데라바드 등 주요 도시에 군병력이 투입됐다. 군 병력이 시내 곳곳에 배치돼 시민들이 집 밖으로 나오지 못하게 하고 있다고 목격자들이 전했다.
앞서 이날 신드 주(州) 카라치에서는 분노한 군중들이 "살인자 무샤라프" "부토 만세" 등을 외치며 경찰에게 총을 발사해 경찰 4명이 부상했다. 방화로 은행과 관공서, 우체국 등이 불탔고, 한 마을에서는 가옥 20여채가 불에 타는 등 사실상 무정부 상태가 됐다. 10여개의 기차역도 불에 타 카라치와 동부 펀잡 주를 연결하는 기차 노선이 중단됐다.
북서부 도시 페샤와르에서도 4,000여명의 성난 시위대가 도로를 점거하고 여당 당사에 불을 질렀고 동부 라호르와 라발핀디, 북부 카슈미르에서도 소요가 잇따랐다. 폭탄 테러도 이어져 페샤와르 북쪽 망글로르 도로변에 설치된 원격 폭탄이 터져 여당인 파키스탄무슬림리그(PML_Q) 총선후보 등 4명이 숨졌다.
■ 부토 시신 고향으로 운구…가족묘에 안장
이날 부토 전 총리의 시신은 고향에 있는 가족 묘에 안장됐다. 라발핀디 종합병원에서 숨을 거둔 부토의 시신은 공군기로 신드 주의 수쿠르시(市)로 옮겨진 뒤 헬기로 고향인 나우데로 마을의 가족묘지로 운구됐다.
부토의 장례식에는 수 천명의 지지자들이 모여 비탄에 잠겼다. 부토의 남편 아시프 자르다리와 세 자녀도 아랍에미리트연합(UAE) 두바이에서 급거 귀국해 장례식에 참석했다.
AP통신은 라발핀디 종합병원 의사를 인용, 부토의 직접적 사인이 목 뒤에 맞은 총상이라고 보도했다. 총알이 목을 관통하면서 척수가 심각하게 손상돼 수술을 했지만 살려낼 수 없는 상황이었다고 의사는 밝혔다.
■ 부토 죽기 전 이메일, "무샤라프에 책임"
부토 전 총리가 10월 주변인에게 보낸 이메일에서 자신에 대한 경호 조치가 소홀하다며 "내가 해를 입는다면, 무샤라프에게 책임이 있다"고 밝힌 내용이 공개되면서 무샤라프에 대한 의혹도 커지고 있다. 부토는 자신이 살해되면 이메일을 언론에 공개해달라는 부탁까지 해놓았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암살 배후를 풀어줄 수사 결과나 후속 조치를 내놓지 않으면 소요가 내전 수준의 폭동으로 확대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 철벽 경호 뚫어… 공범 가능성
파키스탄 경찰이 부토 전 총리가 피살된 날 사전에 대규모 병력과 장비를 동원한 경비대책을 세웠음에도 테러를 막지 못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라발핀디 경찰 당국이 만일에 대비해 4,000여명의 경찰 병력을 배치했고, 집회 장소로 들어가는 입구에는 금속 탐지기가 장착된 통제소도 세워 출입자들을 일일이 검색했다.
하지만 암살범은 폭탄과 소총까지 소유한 채 버젓이 진입, 경비 당국 내부에 공범이 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최진주 기자 parisco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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