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일 사면 대상에 포함된 임동원, 신건 전 국가정보원장이 국무회의의 사면 의결이 있기 4일 전 대법원에 상고장을 냈다가 3~4시간 만에 취하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에 따라 청와대가 사전에 이들에게 사면 언질을 해준 것 아니냐는 의혹이 일고 있다.
DJ정권 시절 국정원의 불법 도청을 방조한 혐의 등으로 기소된 두 사람은 20일 항소심에서도 유죄가 선고되자 대법원 상고 의사를 강하게 피력했다. 그러나 상고 시한인 27일 오전까지 상고장을 제출하지 않다가 오후 4시30분께 거의 동시에 법원에 상고장을 접수시켰다. 이 과정에서 검찰은 법원에 상고장 접수 여부를 문의하는 등 촉각을 곤두세웠다.
그러나 어찌 된 영문인지 신 전 원장은 당일 오후 6시, 임 전 원장은 오후 8시께 각각 상고 취하서를 법원에 접수시켰다. 항소심 선고 당일에도 무죄를 강력 주장하며 상고하겠다던 당사자들이 상고 만기일에야 상고장을 접수하고, 그것마저도 3~4시간 만에 철회하는 소동을 벌인 끝에 스스로 유죄(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를 확정지은 것이다.
이를 두고 법조계에서는 “청와대로부터 사면 언질을 받고 막판까지 고심하다 상고를 포기한 것 아니겠느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임 전 원장은 그러나 기자와의 통화에서 “(청와대로부터의 언질 같은) 그런 이야기는 하지 않는 게 좋을 것 같다”며 사전교감설을 부인했다.
법원과 수사팀은 허탈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사건을 수사하고 두 전 원장을 기소했던 수사팀 관계자는 “이런 ‘눈가리고 아웅’ 식의 사면이 말이 되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열흘 전 유죄를 선고했던 재판부 관계자는 “언급하는 게 부적절한 것 같다”며 말을 아꼈지만 목소리에는 불쾌감이 묻어 나왔다.
박상진 기자 okom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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