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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한반도 대운하는 무모한 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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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한반도 대운하는 무모한 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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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1.02 0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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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기정권이 들어서기도 전에 연일 '한반도 대운하 건설' 논란이 일고 있다. 이명박 당선인 측의 주장대로 라면 이제 삽만 들면 된다. 모든 것을 생략한 채 특유의 불도저 기질로 밀어붙이려는 이유는 무엇일까. 7% 경제 성장 공약 조급증 이외에는 달리 설명할 길이 없다.

측근인 모 의원은 최근 언론 인터뷰를 통해 당선자의 의지가 확고하고 국민들이 지지했기 때문에 추진하는 것이라며 반대는 수용하지 않겠다고 했다. 대단한 오만이다. 선언적이며 부실한 운하 공약은 있었지만 그 실효성에 대해서는 국민이 동의한 바 없다. 말도 자주 바꾼다.

국민 세금이 한 푼도 들어가지 않는다고 했지만 이제 와서는 호남운하와 금강운하에는 2조5,000억원의 국세를 투입하겠다고 한다. 호남운하와 금강운하는 아직 기본구상조차 밝히지 못하고 있는 실정임에도 말이다.

운하 공약은 당내 경선과 대선을 치르면서 모든 후보들에게 무모한 사업으로 비판 받았다. 당시 박근혜 후보는 경선 결과와 상관없이 운하는 반대하겠다고 공언까지 하였다. 이처럼 한나라당도 운하에는 선뜻 동의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대선 막바지에 발생한 서해 기름유출사고는 국민들에게 커다란 충격을 주고 있다. 배 한 척으로 인해 이토록 대형의 환경참사가 발생할 것이라고는 그 누구도 예측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국민들이 먹는 상수원에 위험천만한 선박운행의 모험이 필요한가.

우리나라 강을 조금만 이해한다면 운하는 가능하지도, 필요하지도 않다는 사실을 쉽게 알 수 있다. 대형 선박이 운행하기 위해서는 강물이 많아야 하고 강이 평평하게 흘러야 한다.

내륙주운이 발달한 나라들의 강은 이 조건을 기본적으로 충족시키고 있다. 적어도 철도로 대체되기 전의 19세기 까지 말이다. 또한 운하는 장거리 운송수단으로 수만㎞가 넘는 넓은 대륙에서 이용되었다. 반면 우리나라는 3면이 바다여서 어느 곳에서도 접근성이 용이하여 항구가 발달하였다.

강은 기울기가 심하고 물이 적어 선박운행에는 적합하지 않다. 더구나 우리 국민은 흐르는 강물을 먹고 산다. 식수원이 심각하게 오염되거나 훼손되면 대체 수자원이 없어 대혼란이 발생하게 된다.

운하를 만들면 5,000년 동안 유유히 흘러온 자연스러운 강은 사라지고 콘크리트 인공구조물로 둔갑한다. 경부운하구상을 보면 6~9m 수심, 200~300m 수로 폭, 19개 갑문, 16개의 댐을 설치한다고 한다.

이런 계획대로라면 강바닥을 모조리 파헤쳐야 하고 한강과 낙동강 553㎞ 전 구간에 300m폭의 인공수로를 만들고 평균 30㎞마다 댐을 설치하게 된다. 흐르는 강이 아니라 거대한 콘크리트 욕조로 둔갑하게 된다. 강 생태계가 파괴되고 수질오염은 불을 보듯 뻔하다. 그래서 운하는 무모한 사업이다.

물류 대안도 있다. 철도와 연안을 이용하는 물류운송정책을 추진하면 된다. 2010년이면 경부KTX 노선이 완공되어 기존 철도의 화물운송능력이 높아진다. 부산에서 인천까지 해양연안 길이는 752㎞이지만 운행시간은 28시간이다. 19개의 갑문과 26㎞의 터널을 통과해야 하는 경부운하보다 철도와 연안 수송은 시간이 빠르고 많은 물품을 운송할 수 있다.

16조원의 공사비도 터무니없이 축소되었고 골재를 팔아서 8조원을 충당하겠다는 것도 상식적이지 않다. 운하를 만들어 4만 달러 시대를 열겠다는 것은 더더욱 토목건설사업의 환상일 뿐이다.

공약과 정책은 엄밀하게 다르다. 국민들의 표와 지지를 얻기 위한 선거공약은 일종의 정치행위에 불과하다. 그러나 정책은 이와 다르다. 국가 예산과 인력이 투여되기 때문에 구체적인 검토와 신중한 과정을 거쳐야 한다.

그간 정치인들에 의해 '허황된 공약'이 남발되어 얼마나 많은 부실사업이 발생하고 막대한 국민세금이 낭비되었는가. 집권초반부터 불필요한 사회갈등이 발생한다면 이는 국가적인 손실이다. 이명박 당선인은 이를 잘 헤아려 운하계획을 당장 중단해야 한다.

<저작권자>

박진섭ㆍ생태지평연구소 부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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