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으로 돌아온 임순례 감독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으로 돌아온 임순례 감독

입력
2008.01.02 05:52
0 0

‘임순례 영화겠지.’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 시사회장에, 팝콘처럼 이런 생각을 들고 들어갔다. 스포트라이트에서 벗어난 주변부 인생의 남루를 사실적 시선으로 감싸 온 임순례(47) 감독. 그가 풀어놓는 2004년 아테네 올림픽 여자 핸드볼팀의 이야기니, 보지 않아도 영화의 질감을 알 것 같았다.

비쩍 말라 웅크린 인생에서 느껴지는 어떤 촉촉함, 그런 감성이려니 했다. 그러나 선입견은 오래지 않아 산산조각 났다. 시종 가볍고 쾌활하게 이어지는 영화는 흥행코드를 골고루 갖춘 상업영화. 필름 돌아가고 20분쯤 지났을까, 옆자리에서 짧고 성급한 시사평이 귓속말로 넘어왔다. “이거 임순례 영화 맞아?”

“이게 참 ‘꿀꿀한’ 얘기잖아요. 핸드볼이 비인기종목이고, 등장인물도 아픔을 갖고 있고. 그런데 이야기가 어두울수록 영화는 가볍게 가는 게 좋다고 생각했어요. 실은 더 코믹한 부분이 많았는데, 편집에서 많이 들어 낸 거에요.”

<세 친구> (1996) <와이키키 브라더즈> (2001)로 임 감독을 기억하는 관객에게 이번 영화는 확실히 ‘다르다’. 좌절과 낙오의 리얼리티를 스크린 한가운데 클로즈업했던 임 감독은, 이번에는 그것들을 가장자리로 밀어 놓는다. 대신 보여주는 것은 코믹하게 그려낸 딴딴한 삶의 의지. 이 정도 변화라면, ‘전향’이라 불러도 될 성싶었다.

“맘 먹고 ‘이번엔 흥행 한번 해보자’, 이렇게 의도한 건 아니었어요. 그냥 시간 지날수록 영화에 대해 여유로워지는 것 같아요. 예전 같으면 ‘커트를 이렇게 잘게 나눠도 되나?’ ‘너무 작위적이지 않나?’ ‘이렇게 웃겨도 될까?’ 그런 생각이 들었을 텐데… 그런 데 대한 관용도도 커진 것 같고요.”

외양만 보자면, 영화는 분명 관객을 끌어들이는 힘이 약하다. 한국에서 유독 안 되는 스포츠영화 장르에다 주연배우는 아줌마들, 임 감독 스스로 밝힌 “내가 연출한다는 데 대한 선입견”까지 “마이너리티적 속성”을 두루 갖췄다. 그럼에도 제작비(프린트, 마케팅비 제외)는 36억원이 들었다. 임 감독은 36억이라는 숫자를 무겁게 느끼고 있었다. 그래서 철저히 상업영화의 어법을 따른 것일까.

“영화가 돈이 많이 들어가는 상품인데… 그 돈을 회수하는 것에 대해 언제까지 나몰라라 할 수 있을까, 내가 전달하려는 메시지 때문에 수십 억을 날려버려야 하나, 이런 생각이 들어요. 적은 예산으로 거기 맞는 이야기가 있다면, 큰 예산에는 거기 맞는 화법이 있겠죠. 예전엔 감독의 몫이 영화를 통한 성찰의 기회를 주는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7,000원 내고 2시간 동안 좋은 느낌을 받을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큰 일을 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요. 이렇게 말하면 진짜 ‘전향’한 게 되나?(웃음)”

임 감독은 항상 꿈을 담을 공간을 잃어버린 사람들을 그려왔다. <세 친구> 는 대학, 직장, 심지어 군대에서도 받아주지 않는 청춘들의 허황한 발걸음을 기록했다. <와이키키 브라더즈> 는 노래할 무대를 잃어버린 왕년의 록밴드 이야기. 이번 영화는 우승을 하고도 소속팀이 해체돼 버리는 핸드볼 선수들이 주인공이다. 작품마다 분위기는 달라도, 임 감독의 시선은 언제나 상처로 상처를 덧댄 사람들을 향한다.

“보통 사람들은 열광하지 않는, ‘저렇게 힘든 일을 왜 하지?’ 하는 일을 하는 사람들에 관심이 많아요. 그들에게는 그것을 해야만 하는 이유가 있고, 그것이 인생을 진실하게 살아가는 방법이니까요. 예전엔 영화를 통해 사람들에게 좋은 메시지를 주고 싶다는 욕심이 많았는데, 이제는 사람들이 여운을 느낄 수 있는 영화를 하고 싶어요. 며칠 지나고도 정말 내가 인생을 잘 살아왔나, 나는 최선을 다해서 살고 있나 하는 생각이 드는 여운이요. 그 여운이 남아서 생활에 변화가 있다면, 감독으로서 보람이겠죠.”

유상호기자 shy@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