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2007 한국사회를 뒤흔든 사건] <5> 태안 기름유출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2007 한국사회를 뒤흔든 사건] <5> 태안 기름유출

입력
2008.01.02 05:40
0 0

7일 이른 아침 충남 태안 앞바다에 쏟아진 1만900톤의 검은 기름은 순식간에 태안 해변을 ‘죽음의 바다’로 만들었다. 백사장이 시커멓게 변했고, 양식장의 굴과 전복은 모두 폐사했다. 바다가 삶의 터전이던 태안 주민들은 절망했다.

그러나 절망은 곧 희망으로 바뀌었다. 매일 수만명씩 전국에서 몰려드는 자원봉사자의 손길은 기름띠를 빠르게 걷어내며 태안의 속살을 되찾고 있다. 방제 작업 지원을 위해 온 외국의 전문가들은 “한국 국민이 기적을 만들고 있다”며 놀라움을 나타냈다.

27일 태안군 소원면 천리포 해수욕장에서 만난 정기상(41ㆍ자영업ㆍ경기 용인시)씨의 표정은 밝았다. 그는 “보름 전 봉사활동을 했는데, 오늘 다시 방학을 한 아이들을 데리고 왔다”며 “그 때와 비교하면 믿기지 않을 정도로 깨끗해졌다”고 말했다. 9일부터 이곳에서 급식봉사를 하고 있는 예수사랑선교회 김범곤 목사는 “자원봉사자가 급증해 급식인원이 초기 하루 2,000명에서 지금은 4,000명으로 2배나 늘었다”고 말했다.

유치원생의 고사리손에서부터 70대 어르신의 주름진 손까지 수많은 손길이 태안의 해안을 닦고 또 닦았다. 버스 안에서 기말고사를 보면서 태안으로 봉사활동을 온 대학생들도 있었다. 성탄절에도 방제복 차림의 인간띠는 이어졌고, 송년회 대신 태안으로 달려온 기업과 단체들도 많았다. 금강유역환경청은 2008년 1월2일 시무식 대신 태안군 소원면 구름포에서 전직원 100명이 방제작업을 하기로 했다.

충남도 집계에 따르면 태안 자원봉사자는 사고 열흘만인 16일 연인원 10만명을 돌파한 뒤 3,4일 간격으로 10만명씩 증가, 보름 만인 22일 30만명을 넘어섰다. 또 이번 주말에 50만명을 돌파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방제 자원봉사의 모범사례로 꼽히는 1997년 일본 후쿠이(福井)현 미쿠니(三國) 마을 앞바다 중유 유출 사고의 경우 석 달간 30만명의 자원봉사자가 몰려와 기름을 걷어냈다. 하지만 태안은 불과 보름 만에 30만명 기록을 깼다.

태안반도가 사고 이전처럼 복원하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걸리겠지만 파도와 백사장은 제 색깔을 찾았고, 자취를 감췄던 고둥과 게도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청둥오리, 왜가리 등 철새도 개체수는 많지 않지만 다시 날아들기 시작했다.

‘태안의 기적’은 세계 기름방제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고 있고, 그 주인공은 이름없는 자원봉사자들이다. 하지만 아직 샴페인을 터뜨리기는 이르다. 그 동안 사각지대로 방치됐던 태안과 보령의 59개 섬은 이제서야 방제가 시작됐다. 특히 무인도는 아직도 기름 범벅이다. 더 많은 자원봉사자가 필요한 이유다.

인재로 드러난 원유 유출 사고의 교훈도 결코 잊어선 안된다. 초동대응 실패, 방제능력 재점검 및 매뉴얼 정비, 유처리제 유해 논란 등에 대한 후속 조치가 있어야 한다. 진태구 태안군수는 “방제가 성공해 내년 여름 해수욕장들을 가득 채운 관광객들을 다시 보고 싶다”며 “특히 자원봉사자들은 자신이 일했던 곳을 내년에 다시 찾아와 특별한 감회를 맛보면 좋겠다”고 말했다. 자원봉사신청 (041)670-2644~7

태안=전성우 기자 swchun@hk.co.kr

■ 서해 '황금어장 초토화' 지역경제 마비

태안 원유 유출 사고는 충남 서해안의 황금어장을 초토화시키며 지역 경제를 마비시켰다.

27일 현재 충남도가 잠정 집계한 피해현황에 따르면, 서산시 가로림만에서 태안 안면읍 내파수도에 이르는 167㎞ 연안이 기름에 오염됐다. 기름 폭탄을 맞은 어장 면적은 태안군과 서산시 11개 읍ㆍ면 473개소 5,159㏊에 이른다. 특히 굴ㆍ전복 양식장이 밀집한 가로림만 지역은 기름띠가 오일펜스를 넘어 밀려들면서 1,071㏊의 양식어장이 황폐화했다. 태안반도 만대에서 안면도까지 이어진 연안에 조성된 굴,전복 양식장 4,088㏊도 큰 피해를 입었다.

또 충남 태안군과 전북 군산시 등 2개 도 5개 시ㆍ군의 302개 섬 가운데 59개 도서가 기름이 들러붙었거나 타르 덩어리에 오염이 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이들 외에도 조류를 타고 기름띠와 타르 덩어리가 번진 충남 보령ㆍ서천 지역의 양식장 8,571㏊도 직ㆍ간접적인 피해를 입었을 것으로 보여 정확한 조사가 이뤄지면 피해면적은 더 늘어날 전망이다.

수산물의 유통이 막히고 관광산업에 미친 간접피해도 엄청나다. 태안 지역은 여름 피서와 주말 휴가를 위해 한해 2,000만명 이상이 찾는 관광명소다. 특히 연말이면 해넘이를 보려는 관광객들로 방 구하기가 어려울 정도였다. 그러나 사고 이후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겨 펜션과 횟집은 개점 휴업 상태다.

방제는 비교적 신속하게 이뤄지고 있다. 사고 21일째를 맞아 해상의 기름띠가 대부분 제거됨에 따라 방제 당국은 자원봉사자 3만5,000여명 등 5만여명의 인력을 해안가 암벽과 갯바위에 남아있는 기름 제거에 집중 투입하고 있다. 사람이 접근하기 어려운 해안절벽은 전문업체에 맡기고 있다. 그러나 해저에 가라앉은 기름과 타르덩어리 제거는 손도 못쓰는 상태다. 앞으로 해저 오염원을 제거하려면 막대한 비용과 시간이 필요할 전망이다.

태안=허택회 기자 thheo@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