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의 개념과 형태가 변하고 있다. 핏줄로 맺어진 부모와 자식이 한 집에 모여 사는 전통적 가족 개념은 옅어지고(이ㆍ離), 대신 이해관계와 감정에 따라 뭉치는 새로운 형태(합ㆍ 合)의 가족이 늘고 있다.
국제결혼을 통해 가족의 전통을 살려 가려는 움직임도 뚜렷하고(집ㆍ集), 가족 내 권력관계가 바뀌면서 가족 관련 산업의 흐름도 달라지고 있다(산ㆍ散). 무자(戊子)년 새해를 맞아 이합집산(離合集散)을 키워드로 우리사회 가족의 변화상과 그 원인, 그리고 어떻게 그 변화에 적응해 나갈 지를 모색해 본다.
가족 형태의 변화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다양화다. '기러기 가정'을 비롯, '딩크(DINKㆍ아이를 갖지 않는 맞벌이 부부)족''1인 가정''한 부모 가정' '조손 가정''입양 가정' '재혼 가정' '다문화 가정' '동성 커플 가정'등 종류를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다.
실제 통계청 조사결과 자식 없는 부부 등 1세대 가구의 비중은 2000년 14.2%에서 2005년 16.2%로 높아졌다. 2세대가 함께 사는 가구 중 '부부+자녀' 형태의 전통적 가정(670만2,000가구)의 비중은 48.2%에서 42.2%로 떨어진 반면 할아버지ㆍ할머니와 손자ㆍ손녀가 함께 사는 '조손 가정'(5만8,000가구)은 0.3%에서 0.4%로 높아졌고 '한 부모 가정'(137만 가구)도 7.9%에서 8.7%로 비중이 커졌다.
가족 형태의 다양화는 가족 구성원 수가 줄어들고 있는 것과 맥을 같이 한다. 2005년 11월1일 기준으로 한 집에 혼자 사는 1인 가구는 317만 가구로 5년 전(222만4,000가구)보다 42.5%나 급증했다.
이는 1995년(164만2,000가구)과 비교할 때 10년 새 2배 가까이 늘어난 것이다. 전체 가구 중 1인 가구의 비중도 15.5%(2000년)에서 20%로 높아졌다. 2인 가구 역시 19.1%에서 22.2%로 비중이 커졌다.
반면 4인 가구와 5인 이상 가구는 각각 31.1%에서 27.0%, 13.4%에서 9.9%로 비중이 줄었다. 그 결과 1가구당 평균 가족수가 2.88명을 기록하며 처음으로 핵가족의 기본 가족수인 3명 이하로 내려갔다.
통계청 관계자는 "1인 가구 중 60세 이상 여성이 78만8,000가구로 가장 많고 30대 남성이 41만 가구로 두번째"라며 "여성 1인 가구는 고령화에 따른 사별과 이혼, 만혼 현상 때문이며, 남성은 취업, 취학 등의 영향이 크다"고 분석했다.
각종 가족 관련 제도 역시 이 같은 다양화 추세를 수용하는 쪽으로 바뀌고 있다. 국회에 계류 중인 '가족정책기본법'은 가정의 개념에 처음으로 '홀로 사는 가구'를 포함시켰다.
또 가족에 대한 정의에 '사실혼에 기초한 공동체''아동을 위탁 받아 양육하는 공동체''후견인과 피후견인으로 이루어진 공동체'를 새로 넣었다.
이화여대 함인희 교수(사회학)는 "과거에는 가족을 통해 나의 행복을 찾았지만 이젠 구성원 개인을 위한 행복을 찾고 있다"며 "행복하지 않으면 가족도 떠날 수 있다는 생각이 커지면서 가족이 분화하고 다양화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함 교수는 이어 "삶의 다양성을 존중하는 것처럼 가족도 여러 형태로 존재할 수 있음을 인정하고 새로운 가족 구성 원리를 만들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박상준 기자 buttonpr@hk.co.kr
■ 강학중 한국가정경영硏 소장/가족서 '개인행복'으로 사회 가치관 바뀌어
한국가족학회 이사인 강학중(50) 한국가정경영연구소장은 31일 가족의 다양한 변화에 대해 "이는 가족의 붕괴나 해체가 아닌, 가족이 사회변화에 적응해 가는 모습, 즉 발전과정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강 소장은 "가족은 서로 다른 개인들이 모인 공동체"라며 "가족이 아닌, 개인의 행복을 지향하는 쪽으로 구성원들의 인식이 바뀌고 있다"고 진단했다.
-한국 사회에 전통적 의미와 다른, 새로운 형태의 가족들이 많아졌는데.
"과거엔 초혼으로 맺어진 부모님 두 분과 자식이 있는, 그리고 한 지붕에서 함께 생활하는 이들을 '가족'이라고 불렀다. 그러나 가족의 결합 형식이 다양해지면서 가족에 대한 가치관에도 변화가 왔다. 단지 전통적 개념과 차이가 있다고 해서 '문제가정' '결손가정'으로 보는 시각은 잘못됐다."
-가족에 대한 관념이나 문화 등은 어떻게 바뀌었나. 그리고 그 변화의 이유는 뭔가.
"기본적으로는 한국 사회의 가치관이 '가족'에서 '개인' 중심으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원래 한국은 가족의 가치를 중시하는 문화였다. 그리고 가족은 여성의 희생과 자식의 순종을 전제로 지탱되는 남성 위주의 공간이었고, 그 속에서 가족 전체의 행복을 추구하려 했다. 하지만 이제는 '나'의 행복도 추구하는 인식의 전환이 이뤄졌다. 가정의 안정만 지키려 는 것은 의미 없고, 가족을 구성하는 개개인 모두가 행복해야 한다는 '개인주의'가 발현한 것이다."
-1인 가구도 '가정'이라 볼 수 있을까.
"결국은 가정의 한 형태로 봐야 한다. 농경사회에선 한 곳에 함께 살며 가족을 구성했지만, 산업화, 도시화에 따라 일과 가족이 분리됐다. 가족 구성의 조건이 근본적으로 달라진 것이고, 그 결과 가장 나아간 형태가 바로 1인 가정이다."
-앞으로 우리 사회는 '가족'이라는 실체를 어떻게 봐야 할까.
"한 가족이라 해도 구성원들이 그리는 상(像)은 각각 다르다. 하나로 뭉뚱그려진 단일집단이 아닌 것이다. 오히려 가족은 세대별, 성별 등에 따라 서로 다른 개인들이 함께 있는 '이질공간'의 성격을 띤다. 때문에 가족 구성원들 간에 끊임없는 대화와 존중의 태도가 필요하다. 기존 관념에 묶이지 말고 사회변화를 받아들여 가족 내에서 자신의 역할을 재조정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김정우기자 wookim@hk.co.kr
■ 실버타운서 만난 할아버지·할머니는…
"시대적 흐름이니 막을 수는 없겠지요. 그렇지만 많이 아쉽죠."
세밑인 31일 오후 서울 중구 신당동 실버타운 '서울시니어스'에서 만난 이춘식(74) 이문옥(72ㆍ여)씨 부부. 노인들에게 반드시 필요한 의료나 여가활동 등 각종 서비스 시설이 잘 갖춰진 실버타운에서 7년간 살아온 이들은 노후 생활이 썩 만족스럽다는 표정이었다. "건강관리 등을 체계적으로 받고 있어 불편함이 없다"는 말도 덧붙였다.
이런 이씨 부부에게도 마음 한 켠에 아쉬움은 있어 보였다. 멀리 떨어져 사는 자식이나 친인척 등 '가족'에 대한 그리움이다. 해체와 재결합 등 최근 몇 년 사이 우리 사회에서 두드러지게 달라진 가족상을 보는 아쉬움도 크다.
남편 이씨는 싱글맘, 전업주부(主夫) 등 가족 형태의 변화를 이런 식으로 해석했다. "사회가 그렇게 흘러가고 있기 때문에 억지로 막을 수는 없어요. 우리나라도 선진국처럼 점점 소가족제로 바뀌는 것이지요. 또 남성상과 여성상이 변하면서'살림하는 남편'도 등장했지요. 뭐 남자 입장에서는 서글픈 일입니다만 그래도 사법시험 합격자, 판검사 임용에서 여성이 60%가 넘는 '알파걸' 시대이니 인정해야 겠지요."시대와 상황에 따라 가족의 형태와 개념 등도 달라질 수 밖에 없지 않느냐는 게 이씨의 생각이다. 실제 실버타운 역시 각각의 노인가정이 모여 더 큰 공동체를 이루는 새로운 가족 형태 중 하나다.
이날 실버타운에서 만난 노인들은 전통적 가족 형태에 대한 향수를 보이면서도, 혈연이나 혼인으로 맺어진 전통적 가족이 변화할 수 있으며 필요하다면 변해야 한다는 데 대체로 고개를 끄덕였다.
6개월 전 남편을 먼저 떠나보낸 이모(77) 할머니는 미혼입양 등에 대해 "무책임하게 아이를 낳아놓고 나 몰라라 하는 것보단 낫지 않느냐"고 되물으면서"핵가족, 다문화 사회의 시대적 추세를 받아 들여야 한다"고 말했다. 박광규(70) 할아버지도 "전통 가족이 점차 해체되는 것 같다"고 평가했다.
고교 국어교사 출신으로 실버타운 입주를 앞두고 있는 김모(71ㆍ여) 할머니는 조금은 걱정스런 기색이었다. 그는"자신의 인생을 스스로 결정하며 산다는 것은 나쁘지 않더라도 자라나는 아이의 경우 양친 부모가 필요하다"며 "1인 가구, 독신가구 등은 우리 사회가 아름다운 미풍양속을 점점 잃어가는 증거 같다"고 씁쓸해 했다.
김종한기자 tellme@hk.co.kr이현정기자 agada20@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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