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소설가 이해조가 근대 SF(Science Fictionㆍ공상과학소설) 선구자 쥘 베른의 <인도 왕비의 유산> 을 번안, 1908년 <철세계> 를 출간한 것을 기점으로 국내 SF 역사는 내년 100주년을 맞는다. 70년대 이후 산발적이었던 SF 창작은 90년대 PC통신에서 활동한 ‘통신 작가’들의 등장으로 전기를 맞았고, 2000년대 들어 각종 공모전 시행, 전문잡지 및 웹진 창간으로 작가 저변이 확대되고 있다. 철세계> 인도>
아직 소수지만 문학적, 상업적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는 SF 작가군에서 듀나(Djuna)는 가장 주목받는 작가 중 하나다. 배명훈, 김보영, 박성환씨 등 대표 작가 다수가 과학기술 창작문예 공모전(2004~2006년 시행) 등을 통해 2000년대 등장한 신진인데 비해, 듀나는 ‘PC통신 세대’로서 94년부터 10여 년간 꾸준히 창작 활동을 해오고 있다. SF 전문가인 박상준 <판타스틱> 편집위원은 “듀나는 국내 창작 SF 중 가장 양질의 작품을 꾸준히 발표하고 있는 작가”라고 평했다. 판타스틱>
미국 여성 작가 쥬나 반스(Djuna Barnes)의 이름에서 딴 필명으로 쓰고 있는 듀나는 철저한 신변 비공개로도 유명하다. 이영수라는 본명과 71년생 여성이란 것 정도가 알려진 개인정보다. 최근 다섯 번째 작품집 <용의 이> (북스피어 발행)를 낸 그와 이메일 인터뷰를 가졌다. 용의>
-이번 소설집 표제작처럼 경장편도 쓰지만 대부분 단편을 써왔다.
“SF와 추리물은 단편이 강한 장르다. 아이디어를 활용하기에 단편이 적합한 경우가 많다. 구미 장르문학상에선 단편이 장편과 같은 대접을 받는다. 참을성과 끈기가 없는 내 체질에도 맞고.”
-결손가정, 외국인 이주자 등 사회적, 현실적 소재를 즐겨 쓴다. 어떤 문학적 효과를 노리는가.
“사회적이라서 소재로 삼는 건 아니다. 이를테면 외계인에게 고용된 부잣집 딸이란 비현실적 설정에서 아동 학대 문제를 다룰 수도 있는 것 아닌가. 물론 동네 구석에서 이야기를 시작하면 ‘머나먼 은하계’에서 시작하는 것보단 독자를 끌어들이기 쉽다. 하지만 그건 부수적인 것이고, 두 글 사이에 질적 차이가 있다고 보지도 않는다.”
-과학적 지식을 동원해 실감 나는 가상세계를 구축하는 '하드코어 SF'보단 철학적 메시지, 알레고리를 중시한다는 지적이 있다. 그래서 '작가주의'를 추구한다는 평도 듣는데.
“작가주의를 추구하는 건 평론가이지 작가가 아니다. 하드 SF를 쓰지 않는 건 내 머리에서 그것에 적합한 아이디어나 스토리가 안 나오기 때문이다. 다행히 SF란 장르는 운신의 폭이 넓다.”
-<용의 이> 속 단편 '너네 아빠 어딨니?'는 영화사 요청으로 시나리오 각색을 염두에 두고 쓴 작품이다. 이밖에도 시각적으로 생생한 작품이 많은데 영화화를 염두에 두고 창작하나. 용의>
“내 작품들은 대개 추상적이라 영화와 보기만큼 잘 맞지 않는다. 시나리오를 직접 쓸 생각도 없다. 대사 쓰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영화와 연결된 작업은 하고 있다. 지금 쓰는 중편 분량의 스토리도 시나리오도 만들어질 계획이다.”
-표제작의 경우 배후에 상상적 세계를 완결해놓고 썼다기보단 이야기를 계속 증식해가는 것처럼 보인다. 작위적으로 상황의 알리바이를 만드는 문장도 작품집에서 종종 눈에 띄는데.
“완결된 세계를 독자에게 제공할 필요성을 못 느낀다. 세계는 언제나 열려있고 이야기는 늘 중간부터 시작되며 모든 것은 임의적이고 무의미하다. 기승전결과 의미는 인간의 발명품일 뿐이다. 인위적으로 보이는 구절이 있는 걸 부정하진 않지만 사실 그런 것이 제거된 세계가 오히려 인위적이다. 우연의 일치는 무작위적인 우연만큼이나 당연한 자연의 일부다.”
이훈성 기자 hs0213@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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