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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불행을 승화시킨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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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불행을 승화시킨 아이들

입력
2008.01.02 0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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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를 시작하며 지금도 가슴 한 구석이 따스해오는 건 지난 연말 만났던 '장한 꿈나무'들 덕분이다. 예기치 않았던 만남은 대기업 사회복지재단 주관의 장학사업 심사위원으로 위촉된 자리에서 이루어졌고, 그 날은'시설' 출신의 대학 1학년 생을 대상으로 졸업할 때까지 등록금 전액을 지원해 주는 장학생을 선발하기 위한 자리였다.

■ 믿음직한 '시설'출신 대학생들

전국 각지의 보호시설에서 자란 19, 20살 대학생 31명이 지원을 했는데, 시설로 들어가게 된 사연을 듣고 보니 저마다 지금 이 자리에 오기까지의 과정이 그대로 한 편의 드라마요 한 권의 소설이었다.

이혼 직후 아빠는 교통사고로 돌아가시고 엄마는 재혼하여 친할머니께 잠시 의탁했다 보호시설에 맡겨진 친구, 아빠의 폭력을 견디다 못해 초등학교 시절 가출한 이후 지금은 부모 얼굴조차 기억에 가물가물한 친구, 어린 시절 부모의 이혼으로 입양되었다 파양(破養)된 후 오갈 데 없어 시설에 들어온 친구, 16살에 미혼모가 된 엄마의 둘째 딸로 태어나 시설에 맡겨진 자매, 심지어 부모가 누군지 알 길이 없어 홀로 '일가창립'(一家創立)을 한 친구 등, 이들이 그 날의 주인공이었다.

기막힌 사연들을 하나하나 들으면서 이 친구들 얼굴을 어떻게 마주해야 하나, 무엇을 물어야 하나 막막했던 것도 잠시, 문을 열고 들어오는 그들의 얼굴에서 남달리 아픈 사연을 간직하고 있음을 읽어내는 건 불가능했다.

오히려 불행의 덫을 헤쳐 나온 만큼 자신감이 넘쳤고 당당했으며, 자신을 마다않고 거두어 준 시설의 원장님과 사회복지사 및 자원봉사자들께 감사하는 만큼 삶을 향한 열정과 진지함이 묻어나왔다.

덕분에 면접이 진행될수록 못난 어른으로서 한없는 부끄러움을 느꼈고, 이토록 대견한 젊은이들이 있기에 우린 희망을 간직해도 좋으리라는 위로를 받았다. 이혼율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상황에서, 결국 우리 자녀들이 무책임한 이혼의 최대 희생자가 되어버린 냉혹한 현실 앞에선 절로 반성의 마음이 일었다.

어린 시절엔 자신을 버린 부모를 원망도 해보고 반항도 해보았지만, 자신과 비슷한 처지에 있거나 더욱 딱한 상황에 놓인 선배, 동료, 후배들을 만나게 되면서 자신의 상황을 객관화시킬 수 있는 용기를 얻었다는 녀석, 친구들에게 별 거리낌 없이 자신이 시설에서 자랐음을 말할 수 있을 만큼 건강한 자신감을 갖춘 녀석, 남의 집 앞에 버려진 갓난아기를 품에 안고 돌아오면서 아기의 심장박동을 들으며 "내가 네 아픔을 감싸주리라"고 다짐했다는 녀석, 대학에선 아동 복지를 전공하여 자신과 같은 아픔을 겪는 아이들을 진심으로 도와주고 싶다는 성숙함을 간직한 녀석, 자신의 소중함을 일깨워 준 초등학교 3학년 담임선생님을 닮고자 각고의 노력 끝에 서울교대에 합격한 녀석.

이들을 향해 무력한 어른이 해줄 수 있는 이야기라곤 "정말 훌륭합니다. 열심히 노력해서 희망을 꼭 이루시길 바랍니다"뿐이었다.

■ 불행 세습 막는 사회시스템을

면접을 끝낸 후 복지재단 관계자로부터 들은 이야기인즉, 예전 시설에선 실업계 고등학교까지 진학시키는 것으로 의무를 다했다고 생각했으나 최근 들어선 시설 출신으로 대학에 진학하는 율이 상승 추세에 있다고 한다.

누군가 대학생이 되면 훌륭한 역할 모델이 되어 주위에 두루 좋은 자극제가 되기에, 자칫 비행이나 범죄에 빠져들기 쉬운 이들에게 교육기회를 제공해 주는 건 사회적 차원에서도 최선의 방안이란 의견이 제시되었다.

"지원자 모두에게 장학금을 지급해주었으면 좋겠다"는 소박한 희망을 표하고 보니, 이보다 더욱 바람직하기론 국가가 이들에게 전액 장학금을 지원해주는 방안이 마련되어야 하리란 생각이 들었다. 나의 책임을 넘어선 불행이 대(代)를 이어 세습되지 않도록 사회적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야말로 선진 한국의 뚜렷한 징표 아니겠는지.

<저작권자>

함인희 이화여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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