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정부가 한국의 정권교체를 환영하는 모습이다. 일부 정부 관계자는 "한일 관계가 지금보다는 좋아지지 않겠느냐"고 기대감을 표시하기도 했다.
이번 한국 대선에 대한 일본 사회의 관심은 어느 때보다도 뜨거웠다. 지난 가을 본격적인 선거국면으로 접어들자 만나는 일본 사람마다 정권교체 가능성을 물어왔다.
여론조사에서 이명박 당시 한나라당 후보가 월등히 앞서는데도 불구하고 "한국정치가 매우 복잡해서 투표일까지 가봐야 한다"고 설명해 주면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는 사람도 있었다.
■ 한국 정권교체 환영하는 일본
이 같은 관심의 이면에는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일본 사회의 불신이 자리잡고 있다. "일본 정부는 이미 오래 전 지금 한국정부와는 대화가 안 된다는 인식을 갖고 있다"는 한 여당의원의 말대로 일본 사회는 노 대통령에게 알레르기 반응을 보여 왔다.
대체적으로 보수적인 일본 사람들에게 노 대통령은 '럭비공 같은 반일주의자'라는 인상이 강했던 것 같다. 취임 직후 "내 임기 중에 과거사 문제를 언급하지 않겠다"고 선언하는 등 파격적인 대일외교를 추진했던 그가 일본 총리의 야스쿠니(靖國) 신사 참배 등 과거사 문제를 계기로 강경 자세로 돌아서자 배신감 같은 것을 느끼는 모습도 보였다.
임기 중에 추진된 친일파 자손의 재산환수와 과거사 진실규명 작업 등이 모자이크처럼 채색돼 '노무현=반일주의자'라는 이미지가 각인된 것 같다.
물론 이는 일본인들의 주관적인 판단을 근거로 한 것이다. 급속한 우경화의 흐름 속에서 과거사 문제로 이웃나라를 불편하게 만든 일본 정부가 지난 5년간 한일의 갈등과 불화를 모두 노 대통령의 탓으로만 돌리는 것은 옳지 않다.
보편성이 결여된 일본 정치 지도자들의 편협한 섬나라식 정치 행태가 갈등을 재연시키는 경우가 오히려 많았다. 잘잘못을 떠나서 양국의 불화에는 서로에 대한 몰이해와 뿌리깊은 불신이 자리잡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 정부가 왜 이처럼 이웃나라의 대통령 선거에 관심을 갖고, 정권교체를 원했는지를 차분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객관적으로 노 대통령의 대일외교의 성과와 한일관계는 생각만큼 그렇게 나빴던 것은 아니다.
지도자 간의 갈등에도 불구하고 양국 관계는 오히려 질적 양적으로 확대ㆍ발전했다. 다만 이웃 국가의 불신과 오해를 살 수 있는 노 대통령의 비외교적 언행과 과거사 문제에 대한 즉흥적인 대응이 불필요한 불화를 초래한 측면이 있었다.
특히 언제든지 터질 수 있는 시한폭탄으로, 관계 개선의 최대 걸림돌인 과거사 문제에 대한 전략부재가 드러나면서 노 대통령은 일본인들에게 럭비공 같은 지도자라는 인상을 남겼다.
■ 냉철한 과거사 대응전략 필요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가 취임 일성으로 미래지향적인 한일 관계를 선언했다. 꼭 이루고 싶은 목표라면 노 대통령의 실패에서부터 교훈을 찾아야 한다. 한국과 일본이 미래지향적 관계를 설정하기 위해서는 과거사 갈등을 원만하게 다룰 수 있어야 한다.
양국이 과거사 문제로 갈등을 겪으면서도 외교ㆍ안보 분야에서 신뢰를 쌓을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이를 위해 여론에 흔들리지 않고 국민들을 설득할 수 있는 대통령의 뚝심과 신념이 필요하다.
한국의 역대 정부는 집권 초기에는 미래지향적 한일 관계를 역설했으나 결국은 적대관계로 끝났다. 일본 정부가 기대하고 있는 이명박 정부는 한일관계의 악순환 고리를 끊을 수 있기를 기대한다.
도쿄=김철훈 특파원 ch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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