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올림픽의 해가 밝았다. 60억 지구촌 최대의 스포츠제전인 베이징올림픽을 향한 220일의 본격적인 카운트 다운이 시작됐다.
‘하나의 세계, 하나의 꿈(One World, One Dream)’이라는 슬로건 아래 펼쳐질 이번 올림픽의 주인공 자리를 향해 대한의 건아들은 오늘도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베이징올림픽을 빛낼 태극 전사들을 소개한다.
8월8일 오후 8시. 2008 베이징올림픽 개막을 알리는 화려한 축포가 메인스타디움인 베이징올림픽 국립경기장을 화려하게 감싼다. 각국을 대표하는 선수들이 스타디움으로 입장하는 순간, 한국 선수단 중간에 늠름한 모습으로 관중석을 향해 손을 흔드는 세계적 수영 스타의 모습이 보인다.
‘국민 남동생’ 박태환(19ㆍ경기고)은 한여름 밤의 열기로 후끈 달아오른 메인스타디움을 한 바퀴 돌며 4년 전의 기억을 떠올린다. 15세의 나이. 중학교 3년생 신분으로 한국 선수단 최연소 선수로 아테네올림픽에 출전한 그였다.
2004년 8월14일이었다. 아테네올림픽 남자 자유형 400m 예선에 출전한 소년 박태환이 스타트 블록 위에 섰다. 머리 속에는 온갖 생각이 가득했다. 하루 빨리 세계적인 선수로 성장해 어려운 집안을 일으키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잔뜩 몸을 웅크리고 크라우칭(crouching) 자세를 취하고 있던 박태환의 다리는 그래서 더욱 떨리고 있었다.
출발 버저가 울렸다. 그리고 또 한번의 버저가 이어졌다. 출발 신호 전에 물 속으로 뛰어든 박태환은 실격이었다. 올림픽을 위해 모든걸 포기하고 달려온 그였다. 박태환은 화장실에 처 박혀 2시간 동안 눈물을 훔쳤다.
박태환은 고개를 가로 저으며 4년 전의 아쉬움을 다시 한번 곱씹었다. 그리곤 되뇌인다. “똑 같은 실수를 되풀이 할 수는 없다.”
박태환은 개막식의 흥분을 뒤로 하고 낯선 선수촌에서의 하룻밤을 지낸다. 바로 다음 날인 9일부터 34개의 금메달이 걸린 수영 경영 종목의 예선전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남자 자유형 200m와 400m, 1,500m에 출전하는 박태환은 최대 금메달 2개를 기대하고 있다.
4년 동안 쉬지 않고 헤엄쳐 온 그였다. 그리고 4년이 지난 지금. 박태환은 금메달 0순위로 꼽힐 만큼 세계 수영계의 최강자 중 한 명으로 당당히 올라섰다.
2006년 12월 카타르 도하 아시안게임에서 3관왕에 오르며 시작된 그의 질주는 한 순간도 쉬지 않고 계속됐다. 지난해 3월에는 세계수영선수권에서 한국 선수로는 최초로 금메달(자유형 400m)을 따내며 일약 세계적인 스타로 떠올랐고, 여세를 몰아 8월 프레올림픽에서 또 다시 ‘최강자’ 그랜트 해켓(28ㆍ호주)을 꺾고 자유형 400m 우승을 차지했다.
11월에는 호주-스웨덴-독일로 이어지는 쇼트코스 월드컵에서 3개 대회 모두 3관왕을 차지하며 ‘괴물’이라는 별명을 새롭게 추가했고, 해켓은 “베이징올림픽에서 400m 금메달은 박태환이 차지할 것”이라고 공언했다.
베이징 중심부에서 북쪽으로 10㎞ 지점. 메인스타디움 바로 옆에 위치한 국립 아쿠아틱센터는 3년 간의 기나긴 공사를 거쳐 현재 마무리 공사가 한창이다.
물방울이 피어 오르는 환상적인 분위기의 외관을 자랑하는 이 수영장의 별명은 ‘워터큐브(Water Cube)’. 최대 1만1,000명이 관중석을 메울 ‘워터 큐브’에 애국가가 울려 퍼질 날이 머지 않았다. 시상대 가장 높은 자리에서 태극기를 바라보는 박태환. 그가 만들어갈 ‘신화’는 이제 시작이다.
허재원 기자 hooa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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