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가장 손 꼽아 기다려온 전시, ‘불멸의 화가-반 고흐’전. ‘태양이 작열하는 오후 두 시의 진실’이라 불리는 이 불멸의 화가를 매일 만나는 행복한 사람들이 있다. 반 고흐와 함께 2007년을 보냈고, 새로 오는 2008년도 그와 함께할 반 고흐전의 도슨트 조은영(24), 박미진(26), 최혜화(26), 문혜정(30), 이지은(31)씨. 오후 두 시의 태양처럼 겨울 한기를 잊게 해주는 ‘반 고흐의 여인들’이다.
서울시립미술관에서 11월24일 시작한 반 고흐전의 전시 해설사로 맹활약중인 다섯 명의 도슨트가 한자리에 모였다. 미술사학과 서양화, 불문학 등 전공은 다채롭지만, 대형전시에서만 수 차례 도슨트를 해온 베테랑들이다.
가장 가까이서 반 고흐를 지켜보는 이들은 “반 고흐는 누구나 한 번 알게 되면 푹 빠지지 않을 수 없는 화가”라고 입을 모았다. “극적인 생애를 알게 될수록 더더욱 감동적인 작품들”(이지은)이자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으면 눈물이 왈칵 나는 정서적 감염력이 강한 작품”(문혜정), “농민들에 대한 사랑이 진심으로 느껴지는 진짜 농민화가”(박미진)라는 것.
“반 고흐만큼 도판과 원화의 차이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화가는 없는 것 같아요. 100여년 전 작품이라는 게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생생하고 살아있는 작품들이라 그런지 원화를 눈앞에 두고도 ‘이게 전부 진짜 원작들이냐’는 질문들을 많이 하세요.”(이지은)
전시 설명을 들으려는 관람객들이 문전성시를 이루는 탓에 한 차례 설명을 마칠 때마다 몸살이 날 지경이지만, 관객들이 쳐주는 박수갈채를 받으면 피로가 싹 풀린다. “설명 후 전화번호를 물어보시는 분들이 꽤 있는데, 나중에 정말 전화를 하셔서 오늘 또 전시를 보러 갈 건데 꼭 선생님의 설명을 듣고 싶다 하실 때가 있어요. 그럴 때 정말 큰 보람을 느끼죠.”(조은영)
“저는 전시 설명을 들으신 어느 부부께서 친척 중에 네덜란드 화상이 있어서 집에 반 고흐 미술관과 크뢸러 뮐러 미술관의 자료와 도록들이 많다며 주시고 싶다고 하신 적이 있어요. 네덜란드어로 돼 있는데 필요하면 번역해서 주시겠다고 하셔서 정말 감동했었죠.”(이지은) 이씨는 “그런 관람객들 덕분에 혼자 있을 때도 반 고흐에 대해 더 들려드릴 얘깃거리가 없을까 늘 고민한다”며 “하루하루 숙제를 하는 기분으로 반 고흐만 생각하게 된다”고 말했다.
혹시 관람객 중에 데이트 신청하는 남자들은 없을까. “저요!” 손을 번쩍 드는 조은영씨. “설명 너무 잘 들었다면서 카페티리아에서 커피 사주신 분 있어요.” 일제히 “좋겠다~” 탄성. 이어 “왜 나는 없는 거야” 볼멘소리가 터진다.
반 고흐가 전세대로부터 사랑받는 화가라 이번 전시엔 어느 때보다 어린이 관람객들이 많다. 반 고흐의 생몰연도부터 시작해 생애, 주요작품의 특징까지 두루 꿰고 있는 어린이들도 상당수라 놀랄 때가 적지 않다. 설명을 다 듣고선 “나중에 반 고흐 같은 화가가 되고 싶다”는 어린이 관객들을 만날 때면 특히 보람을 느낀다고.
하지만 일부 학부모들의 극성스런 교육열 때문에 눈살을 찌푸려야 하는 경우도 있다. 뒷사람은 아랑곳없이 목말을 태우고 그림 앞에 바짝 서서 보는 사람들, 전시장 안에서 페트 병에 아이 오줌을 뉘는 엄마들, 싫다는 아이를 억지로 도슨트 설명에 밀어넣어 울리는 부모들…. 도슨트들은 “아이들에게 작품 감상을 강요하지도 말고, 어른들이 편하게 보겠다고 그냥 풀어놓지도 말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아이들의 손을 잡고 아이 손에 이끌려 아이들이 보고 싶다는 것을 묵묵히 함께 봐주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미술교육법이라는 것.
반 고흐는 대표작이 매우 많은 화가인데도 ‘해바라기’나 ‘밤의 카페 테라스’처럼 자기가 알고 있는 작품만 찾는 일부 관람객들도 이들을 안타깝게 한다. 최혜화씨는 “지금 전시 중인 작품들도 한국에 오는 게 쉽지 않은 대단한 작품들이고, 반 고흐 작품의 특징을 충분히 잘 보여주고 있다”며 “지금 내 옆에 와 있는 작품부터 제대로 공부하고 감상하는 지혜가 필요한 것 같다”고 말했다.
관람객들께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는지 묻자 도슨트들은 전시장 입구에 적힌 반 고흐의 편지 속 문구를 합창했다. “‘예술이란 얼마나 풍요로운 것인가! 본 것을 기억할 수 있는 사람은 결코 허무하지도 생각에 목마르지도 않을 것이며, 고독하지도 않을 것이다.’ 시공을 초월해 반 고흐가 우리에게 전하는 메시지 아닐까요.”
박선영 기자 aurevoi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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