쥐띠 해는 풍요와 희망과 기회의 해이다.
쥐해에 태어난 사람은 식복과 함께 좋은 운명을 타고 났다고 한다. 위험을 미리 감지하는 본능이 있고, 어려운 여건에서도 살아남는 근면한 동물이고 다산과 풍요의 상징으로서 구비전승에 두루 나타난다.
쥐는 12지중 그 첫자리를 차지하고 있지만 사람에게는 그리 유익한 동물이거나 영물이 아니다. 생김새가 얄밉고, 성질이 급하고 행동이 경망한데다 좀스럽다. 더욱 혐오스러운 것은 양식을 약탈하고 물건을 쏠아 재산을 축낸다는 것. 그나마 쓸모가 있다면 의약 실험동물로서의 공헌 정도다. 요즘은 햄스터다 해서 애완용 쥐들이 등장해 쥐스럽지 않은 즐거움까지 주고 있다.
쥐는 지금부터 약 3,600만년 이전에 나타났다고 전해진다. 그 종류만도 약 220속 1,800종이 있다. 전세계의 쥐는 약 8,000억 마리가 살고 있다고 추정된다. 인간이 먹는 것은 무엇이든 잘 먹는 잡식성 동물로 번식력은 다른 동물이 따라오지 못한다. 생후 70일이면 성적으로 혼기에 접어든다. 임신 기간은 17~30일, 출산 후 몇 시간만 지나면 발정이 나 교미하고 임신하기를 반복한다. 집쥐는 1회 6~9마리를 낳는데 1년에 출산하는 횟수는 6, 7회에 달한다.
쥐는 영리하고 몸집이 작아 행동이 재빠르다. 천장이나 다락, 창고, 시궁창 등 다른 동물의 눈에 잘 띄지 않는 어두운 곳이면 어느 곳이고 가리지 않고 잘 견디며 산다. 남극대륙이나 눈 덮인 산꼭대기를 제외하고는 전 세계적으로 널리 분포되어 있는 동물이 쥐다.
쥐의 훔치는 행위가 늘 지탄의 대상이 되는 반면, 그 근면성은 칭찬을 받아 왔다. 쥐는 부지런히 먹이를 모아 놓기 때문에 숨겨 놓은 재물을 지키는 존재로 여겨졌다. 그래서 ‘쥐띠가 밤에 태어나면 부자로 산다’는 말도 생겨났다. ‘쥐가 모자를 씹으면 재물을 얻게 된다’거나 ‘쥐가 방안에서 쏘다니면 귀한 손님이 온다’ 했고, ‘쥐가 집안에서 흙을 파서 쌓으면 부자가 된다’고도 하고 ‘쥐띠가 밤에 나면 잘 산다’고 했다.
쥐는 예로부터 농사의 풍흉과 인간의 화복뿐만 아니라 뱃길의 사고를 예시하거나 꿈으로 알려주는 영물로 받아 들여졌다. 쥐에게는 초능력이 있어 지진이나 화산, 산불이 나기 전에 그것을 미리 알고 떼를 지어 그곳에서 도망친다고 한다. 이러한 쥐의 예지력(豫知力) 때문에 숭배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특히 해안도서 지방에서 쥐는 수호신의 하나이다. 전남 신안군의 비금도 월포리 당과 우이도 진리, 대촌리, 경치리, 소우이도의 당은 쥐신을 모신 대표적인 예이다. 이들 지역에서는 쥐의 이변은 미래에 일어나게 될 특수한 사건의 상징적 예시로 보고, 아무런 변고가 없도록 제단을 설치하고 당의 주신(主神)과 더불어 제를 올리고 있다.
12지지의 하나로서 쥐를 활용하는 전통은 이미 신라시대에 농후하게 나타나는데, 김유신 묘라든가 민애왕릉과 흥덕왕릉 등지에서는 쥐를 형상화한 띠 동물상을 무덤 주위에 두르거나, 납석제(蠟石製) 쥐 조각을 무덤 안에 넣기도 했다. 흥덕왕릉 12지신상 중에서 쥐만이 유일하게 천의(天衣)를 걸친 모습인 것도 주목할 만하다.
조선시대 들어와서는 쥐의 생태를 사실적으로 묘사한 쥐 그림이 많이 전한다. 들에서 수박이나 홍당무를 갉아먹고 있는 쥐를 묘사한 그림은 재미를 선사하기도 하는데 신사임당(申師任堂)이 그린 수박과 쥐 그림은 이런 경향을 대표한다. 겸재 정선 또한 <서투서과(鼠偸西瓜)> 라 해서 같은 소재를 한 그림을 남기고 있다. (도움말 천진기 국립민속박물관 민속연구과장) 서투서과(鼠偸西瓜)>
이성원 기자 sungwon@hk.co.kr
■ 쥐띠 해엔 무슨 일 있었나
1900년 만국우편연맹에 가입했고, 한성전기회사가 최초로 종로에 가로등 3개를 가설했다. 한강철교가 준공됐고 경인선 철도도 완전 개통됐다.
1912년 일제 식민지하에서 어업세령(漁業稅令)과 수산조합ㆍ어업조합 규칙이 공포됐다.
1924년 의열단원 김지섭이 도쿄 궁성에 폭탄을 투척했고 서울에선 전조선노동총동맹이 발족됐다. 최승일 이호 등 문인 30여명이 프롤레타리아 예술동맹을 결성했다.
1936년 베를린올림픽에서 손기정이 마라톤에서 우승, 식민통치 암울했던 국민들에게 희망을 안겨줬다. 10월에는 한강 인도교가 개통, 배가 아닌 다리로 시민들이 한강을 건널 수 있게 됐다. 1948년
제주에선 4ㆍ3항쟁으로 무고한 시민이 목숨을 잃었다. 6월엔 유엔감시하에 남한 총선거가 실시돼 제헌국회가 개원했고, 8월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됐다.
1960년 격동의 한해였다. 2월 조병옥 민주당 대통령 후보가 사망했고, 3ㆍ15 부정선거로 규탄 시위는 4ㆍ19혁명으로 승화, 결국 이승만 대통령이 하야했다. 허정 과도내각을 거쳐 8월 제2공화국 윤보선 대통령이 선출됐다.
1972년 제4공화국 유신체제가 막을 올린 해다. 5월 프랑스 파리에서 세계 최고 금속활자 <직지심경> 이 발견됐고, 8월 박정희 대통령은 기업사채를 동결하는 ‘경제안정과 성장에 관한 긴급명령’을 발표했다. 10월 계엄사는 포고 제1호로 대학을 휴교시키고 신문ㆍ통신 사전검열제를 실시했다. 11월에 유신헌법이 확정되고, 12월 통일주체국민회의에서 박정희 후보가 제8대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직지심경>
1984년 5공의 폭압기였다. 학원사태는 11월 민정당 당사 점거 농성으로 이어졌고, 로스엔젤레스 올림픽에서 한국은 10위를 차지하는 쾌거를 거뒀다. 여름엔 한강에 대홍수가 나 189명이 목숨을 잃었다. 이때 북한이 수재물자를 보내줬고 이를 계기로 남북한경제회담이 열렸다. 로마 교황이 처음 한국을 방문했고, 11월 판문점에선 관광왔던 소련인이 남쪽으로 탈출, 남북한 경비병들의 총격전이 일어나 남한 1명, 북한 2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1996년 전두환 노태우 전직 대통령이 나란히 수의를 입고 법정에 섰다. 북한 무장공비 26명이 잠수함을 타고 강릉 앞바다에 침투, 50여일 국민을 긴장시켰고, 북 주민 김경호씨 일가 17명이 북한을 탈출해 중국 대륙을 거쳐 한국에 들어왔다. 2002 월드컵을 한국과 일본이 공동유치키로 했고, 한국은 OECD에 29번째 회원국으로 가입됐다. 경복궁을 가로막았던 구 총독부 건물이 완전 철거됐다.
2008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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