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 당선자는 10월 18일 "산업자본의 은행 진출을 원천 차단하는 것은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지 않으며, 이제 금산분리를 폐지해야 될 때가 됐다"고 주장했다.
이후 금산분리 폐지 주장에 대한 비판여론이 커지자 11월 5일 "(금산분리 폐지 주장이) 재벌의 은행 소유를 찬성하는 것은 아니며, 다만 외국자본의 지배를 막기 위해 연기금이나 수백개의 중소기업이 공동인수 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한발 물러섰다. 이는 차기 정부가 추진하려는 '금산분리 원칙 완화'에 대한 반대여론이 만만치 않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대선의 높은 득표율로 힘을 얻은 이 당선자 측이 26일 '금산분리 단계적 완화' 추진 방안을 다시 밝히면서 금산분리를 둘러싼 찬ㆍ반 논란이 뜨거워지고 있다.
특히 시기적으로 우리금융지주나 산업은행의 투자은행(IB) 부분 분리가 임박한 상황이어서 금산분리 완화 방안은 향후 금융산업 판도에 결정적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이 당선자 측이 구상 중인 금산분리 완화의 골자는 "산업자본의 은행지분 소유 제한을 10%와 15%로 단계적으로 확대하고, 연기금의 은행 소유제한 규제도 풀어 대기업 6~7곳과 연기금이 컨소시엄을 구성해 은행을 소유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산업은행의 IB 부분 및 대우증권, 그리고 우리금융지주를 하나로 묶은 초대형 민간금융기관의 탄생이 가능해진다. 이 당선자 측은 국내 민간자본이 소유하는 대형 금융기관 탄생을 유도, 세계적인 투자은행과 맞설 수 있도록 육성하겠다는 청사진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재계는 "오히려 늦은 감이 있다"며 이 당선자 측의 금산분리 완화 추진 방안을 크게 환영하는 분위기다. 이현석 대한상공회의소 조사1본부장은 "정부가 금산분리 원칙을 지나치게 고수하는 과정에서 국내 7대 시중은행 중 6개가 외국인 소유로 넘어갔다"며 "하나 남은 우리금융지주를 국내 자본이 인수하기 위해서는 금산분리 완화가 꼭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 본부장은 "금산분리가 완화되면 은행이 특정 기업의 사금고가 될 수 있다"는 우려에 대해서도 "이미 은행은 특정 기업이 독점적으로 지배할 수 없을 만큼 커졌고, 설령 대기업이 지배주주가 되더라도 전횡을 방지할 수 있는 제도와 함께 소액주주ㆍ시민단체ㆍ외국인 투자자들의 시장감시 체제가 잘 갖춰져 있어 크게 우려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선진국 중 금산분리를 철저히 지키는 국가는 영국과 미국 등 소수이며, 이들 국가도 인터넷 확산으로 유통업체나 제조업체가 금융을 겸업하는 신종 금융서비스가 발달하고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진보적인 시민단체와 학계에선 반대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전상인 홍익대 경제학과 교수는 "차기 정부가 진행하려는 금산분리 완화는 우리금융지주를 재벌에게 선물하려는 정책일 뿐"이라며 "현재의 금산분리 원칙을 고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 교수는 "현재 조사가 진행 중인 삼성 비자금 사건은 금산분리 원칙이 지켜지는 상황에서도 대기업이 은행을 마음대로 조정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라며 "금산분리 완화론자들의 '금산분리 완화 후 감독기능 강화' 주장은 이런 현실을 외면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전 교수는 또 "시중 은행들이 외국자본에 넘어간 것은 외환위기 극복 과정에서 생긴 결과일 뿐 금산분리 원칙과는 무관하다"면서 "오히려 외환은행이 단기 헤지펀드이자 산업자본인 론스타에게 인수되도록 허용해 여러 가지 문제를 일으키고 있는 것은 금융당국이 금산분리 원칙을 철저히 적용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전 교수는 "세계 100대 금융기관의 소유구조를 살펴보면 금산분리가 지켜지지 않는 예는 4개에 불과하며, 그나마 주 정부나 우체국 등이 5% 내외의 지분으로 대주주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며 "국내 은행을 세계적인 은행으로 육성하려면 철저한 금산분리와 소유 분산을 통해 정부와 외국자본, 대기업으로부터 독립된 기관으로 민영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논란이 이처럼 가열되자 이한구 한나라당 정책위의장은 이날 한국경제학회 주최 포럼에서 "산업자본의 금융기관 소유 허용은 제2금융권부터 완화할 계획이며, 은행은 기업간 컨소시엄에게만 소유를 허용한 후 단계적으로 단독 인수도 가능토록 할 것"이라며 금산분리 완화를 신중하게 추진하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정영오 기자 young5@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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