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원들의 가슴 속에 잠재된 변화 본능의 DNA를 깨워라.'
요즘 SK 직원들이 바짝 긴장하고 있다. 단순한 변화의 차원을 뛰어넘어 근본적인 체질 개선을 요구하는 그룹 최고경영자(CEO)의 주문 탓이다.
26일 SK그룹에 따르면 최태원 회장은 지난 주 SK에너지와 SK텔레콤 등 계열사의 조직개편과 임원인사를 단행한 뒤 임직원들에게 다음과 같이 비장한 각오를 주문했다.
"앞으로 SK는'룰 메이커(Rule Maker)'로 변화를 선도해야 한다. 지난 10년간 우리에게 익숙했던 시장의 룰이 바뀌고 있는데, 여기에 적응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SK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게임의 룰'을 우리 스스로 만들어 변화를 주도해야 한다."
최 회장이 지적한'게임의 룰'을 SK가 스스로 만들어가야 한다는 의미는 무엇일까. 최 회장은 "일선 경영현장은 글로벌 메이저 기업들과의 생사를 건 게임에 돌입했다"며 "메이저 기업들과의 경쟁에서 살아 남아 성장하느냐 아니면 도태되느냐는 우리의 선택에 달려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위기의식을 고취하는데 그치지 않고 생존전략을 위한 해결방안까지 제시했다. 바로 '끊임없는 변화'다. 최 회장은 한 해를 마감하며 앞으로 5년간 SK그룹의 모든 역량을 변화와 혁신을 통한 성장에 주력해달라고 임직원들에게 강조하고 나선 것이다.
최 회장의 최근 행보에 대해 그룹 안팎에선 고 최종현 SK그룹 회장 타계 이후 10년간 경영수업을 거친 최고경영자(CEO)의 무게가 점차 느껴진다는 평가가 나온다.
실제 SK그룹은 국내 어느 그룹보다 신속하게 변화와 개혁을 추진하고 있다. SK는 지난 수년간 끊임없이 시도해 온 지배구조와 사업구조 개편에 머물지 않고, 최근 혁신적인 조직 개편안을 선보였다. SK에너지와 SK텔레콤, SK네트웍스 등 SK그룹 주력 3사가 '회사 내 회사(CIC: Company In Company)'제도를 전격 도입한 것이다.
CIC는 각 분야가 자율적인 하나의 회사로 운영되는 구조를 말한다. CIC 사장이 CEO에게서 각 사업에 대한 책임과 권한을 부여 받고, 이를 운영해 성과를 창출하는 방식이다.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하고 의사결정 속도를 높이기 위한 혁신 작업의 결과물이다. SK 관계자는 "경영환경의 불확실성 심화에 따라 개별 사업이 전문성을 갖고 자율ㆍ책임경영을 해나가도록 CIC제도를 도입했다"고 설명했다.
SK그룹이 올해 지주회사로 지배구조의 틀을 획기적으로 바꾼 것도 변화 본능을 깨우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다. SK는 올해 7월 지주회사 체제를 갖추면서 제3의 창업을 선언했다.
최 회장은 "기업환경 변화에 앞서 기업이 진화하지 않으면 생존은 물론 성장도 불가능하다"라는 논리로 점진적 변화보다는 과감한 개혁을 선택했다.
사업구조의 틀도 바꿨다. 주력 계열사들이 글로벌 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있도록 '석유(정제)=SK에너지', '이동통신서비스=SK텔레콤', '무역=SK네트웍스'라는 고정 관념을 깬 것이다. 자기 혁신은 오로지 성과로만 나타난다고 보는 최 회장 경영관의 반영이다.
SK그룹은 최근 3년 연속 전 계열사 흑자를 눈앞에 두고 있다. SK그룹의 제조업 수출 비중은 2년 연속 50%를 넘길 전망이다. SK에너지와 SK케미칼, SKC, SK인천정유 등 SK그룹 4개 제조업체는 올해 3분기에 4조1,999억원을 수출, 전체 매출(7조8,483억원) 대비 수출 비중이 53.5%에 달했다.
지난해 3분기 이들 4개 제조업체가 8조1,576억원의 매출 가운데 58.2%(4조7,467억원)를 수출해 처음 50%를 넘긴 이후, 현재까지 5분기 연속 수출이 내수를 앞섰다.
권오용 SK그룹 브랜드관리실장은 "1953년 직물공장으로 시작한 SK가 내수기업이라는 이미지를 벗고, 수출 주도형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며 "최 회장이 CEO가 된 이후 10년간 자산과 매출이 2배 이상 성장하는 등 SK의 변화는 실적으로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장학만 기자 loca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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