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견기업 임원인 이모(48)씨는 7년 전부터 대변을 볼 때 가끔 피가 몇 방울씩 섞여나왔지만 아프지는 않아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그런데 최근 중요한 회의를 하다 갑자기 앉아있기 어려울 정도의 심한 통증에 시달렸다.
치핵이 항문 밖으로 빠져나온 것이다. 열심히 좌욕을 하고 치질약도 써보았지만 그때 뿐이었다. 피곤하거나 과음하면 증상은 특히 심해졌다. 이씨는 결국 병원을 찾아 치핵절제술을 받았다.
대장항문전문 대항병원 조사에 따르면 한국 성인 남녀의 절반 이상이 이씨처럼 치질로 고통받고 있지만 10년 넘게 참고 살다가 결국 수술을 받는 환자가 42%나 됐다.
그렇다면 치질은 언제 수술을 받아야 할까. 치질 수술 여부를 결정하는 요인은 탈항과 출혈의 정도, 통증 등 3가지로 나눌 수 있다. 대항병원 이두한 원장은 “수술을 결정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요소는 탈항과 통증의 정도”라며 “항문 출혈이 심해 빈혈까지 온다면 합병증이 생길 수 있기 때문에 빨리 수술을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치질은 항문 안팎의 질환을 통칭한다. 이 가운데 치핵은 항문 안쪽 점막과 점막 아래 조직이 부풀어 오르거나 늘어져 빠져나오는 상태를 말한다. 샛길로 진물이나 고름이 새어 나오는 것을 치루라고 하며, 배변시 피가 나고 아프면 치열이라고 한다. 각 질환별 올바른 치료 및 수술시기 등을 자세히 알아본다.
■ 배변시 피가 난다면 무조건 병원 가야
치질에 있어 대다수 사람들이 가장 두려워하며 급히 병원을 찾게 되는 상황은 바로 출혈이다. 대변을 볼 때 피가 똑똑 떨어지기도 하고 때로는 주사기로 쏘듯이 갑자기 검붉은 피가 쏟아져 나오거나 선홍색으로 휴지에 묻으면 당황하게 된다.
항문에 피가 나는 가장 큰 원인은 항문 안쪽 혈관이 늘어나 점막이 함께 늘어져 빠져나온 치핵으로, 이는 탈항과 함께 통증도 동반한다. 치핵이 오래된다고 암이 되는 것은 아니다.
또 대변 볼 때 피가 나면서 아픈 항문이 찢어지는 치열에서도 출혈이 생길 수 있다. 직장암도 피가 잘 나지만 직장암에서 나는 피는 다소 검고 찐득하면서도 비릿하고 역겨운 냄새가 난다. 하지만 피의 특성만으로 섣불리 판단하는 것은 상당히 위험하므로 피가 난다면 병원에 빨리 찾는 게 좋다.
■ 탈항 심해 ‘치질 3도’ 이상이면 수술
치질 증상 중 70%를 차지하는 치핵을 수술할지 여부는 조직이 빠져나오는 탈항의 정도에 달려있다. 대변 볼 때 항문이 밀려나와 휴지나 손으로 누르거나 밀어넣어야 들어가는 치질3도, 증상이 더 심해져 손으로도 잘 들어가지 않는 치질4도의 경우는 한시바삐 수술 받아야 한다. 이때 수술은 치핵 덩어리와 괄약근 같은 주변 조직을 눈으로 확인하면서 절제하는 것이 최선이다.
이외에도 주사기로 쏘듯 출혈이 생겨 빈혈이 생길 정도이거나 자주 붓고 통증을 느끼거나 반복적으로 혈전(피떡)이 생길 때도 마찬가지다. 간혹 탈항이 돼도 저절로 들어가는 경우는 치질2도 증상이지만 일상생활을 하기 불편해 수술을 받아야 하는 경우도 있다.
구원항문외과 이선호 원장은 “치질 수술이 최근에는 비약적으로 발전해 통증도 별로 없고 수술 당일이나 다음날 퇴원할 수 있다”며 “재발률도 1% 미만일 정도로 완치율도 높다”고 말했다.
증상 초기에는 내복약이나 좌약, 좌욕 등으로 치료한다. 특히 좌욕은 통증의 주원인이 되는 항문 괄약근 경련을 이완시켜 통증을 가라앉히는 방법으로 초기에 효과를 볼 수 있다. 탈항 초기에 병원을 방문하면 고무밴드를 이용, 치핵 덩어리를 떼어내는 고무밴드 결찰법이나 열로 응고시키는 적외선 응고법과 같은 간단한 비수술적 치료법이 사용된다.
■ 치루는 ‘즉시 수술’, 치열은 ‘식이섭취’ 등 권장
치루는 항문 안쪽에 생긴 구멍을 통해 항문 바깥쪽 옆으로 샛길이 뚫려 진물이나 고름이 나오고 때로는 가스나 변이 새기도 한다. 치루는 손으로 만지면 딱딱한 줄기가 느껴지는 게 보통이지만 깊은 곳에 있으면 겉으로 아무런 표시가 없어 진단하기 어렵다.
치루는 자연적으로 치유되기 힘들고, 오래 방치하면 복잡치루로 악화할 수 있으므로 치루라고 진단을 받으면 무조건 수술하는 게 원칙이다. 이때는 항문을 죄는 괄약근을 부분적으로 자르는 방법 등 여러 가지 치료법이 쓰인다.
치열은 항문이 좁아 찢어지는 것을 말한다. 배변시 피가 나고 아프면 치열을 의심해봐야 한다. 변이 부드럽게 나오도록 하기 위해 식이섬유소를 되도록 많이 섭취하면 좋다. 또 좌욕을 하면 근육 경련이 풀리며 통증이 가라앉는데 이는 생긴 지 1~2개월 미만의 급성 치열에서 큰 효과를 볼 수 있다. 만성 치열은 좁아져 있는 내괄약근을 부분 절제하는 근치적 수술로 치료한다.
각 질환별 수술 시점에 대해 이 원장은 “개인적으로 증상을 판단하는 것은 위험할 수 있다”며 “병원을 빨리 찾아 항문 상태나 증瓚?정도를 세심히 관찰한 뒤 결정하는 것이 최선책”이라고 말했다.
■ 생활 속 치질 예방
치질 예방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배변을 규칙적으로 하며, 한번에 5분 이상 변기에 앉지 말고 화장실에 신문이나 잡지 등을 들고 가는 것도 삼가야 한다.
일상생활에서는 오랫동안 쪼그려 앉아있거나 과음을 피해야 하고, 무거운 것을 들거나 가파른 산에 오르는 것도 피해야 한다. 또한 맵고 짠 음식은 되도록 먹지 말고 변이 너무 딱딱하지 않도록 섬유소가 많은 음식을 충분히 섭취하는 것도 중요한 예방법이다.
권대익 기자 dkw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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