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윤재(43) 전 청와대 의전비서관과 전군표(52) 전 국세청장 수뢰사건은 참여정부의 도덕성에 치명적인 상처를 안긴 대표적 측근 비리 사건으로 기록됐다. 사건 초기 노무현 대통령까지 나서 “깜도 안 되는 의혹”이라며 감싸고 나섰지만 이들은 검찰 수사의 예봉을 피할 수 없었다.
이 사건은 재개발사업의 구조적 비리는 물론 권력층 인사가 관련된 청탁 비리, 국세청 세무조사 무마 비리, 인사 청탁, 뇌물 상납, 금융권의 여신관리 난맥상, 대형 건설사의 특혜 시공 참여 등 우리 사회에 만연한 고질적 병폐들이 총망라돼 있었다.
■ 지역 토착 재개발 비리가 발단
사건은 부산 한림토건 대표 김상진(42)씨가 각종 편법을 동원, 연제구 연산동 재개발사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부하 직원들과 자중지란을 벌인 게 단초가 됐다.
형(45)과 소규모 전문 건설업체를 공동 운영해 온 김씨는 정ㆍ관계 인사들과 교제 폭을 넓히며 사업 확장을 도모해 왔다. 특히 김씨는 2000년 16대 총선 당시 부산 북ㆍ강서을에서 출마한 노 대통령의 선거를 돕던 정 전 비서관과 인연을 맺은 후 2003년에는 2,000만원의 정치자금을 제공하며 친분을 쌓았다. 미래에 대비한 일종의 보험 성격이었다.
실제 참여정부 출범후 정 전 비서관이 ‘리틀 노무현’으로 불리며 실세로 부상하자 그를 배경으로 회사를 하도급 전문업체에서 일약 대형 개발사업 시행사로 키웠다.
김씨는 2005년부터 총사업비 3,000억원대 규모의 연산동 재개발사업에 나섰다. 그는 이 과정에서 땅값 부풀리기, 유령계약, 이중계약 등 방법으로 재향군인회 브리지론 225억원, 시공사인 P사가 보증을 선 프로젝트 파이낸싱(PF) 자금 157억원 등 모두 382억원을 빼돌렸다. 4월에는 민락동 놀이공원 재개발사업에 뛰어들어 부산은행에 가짜 서류를 제시하고 680억원을 대출 받아 용역비조로 27억5,000만원을 횡령했다.
김씨가 불법 행위로 400억원이 넘는 돈을 빼돌리는 것을 본 부하직원 진모씨와 이모씨 등이 돈 욕심이 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했다. 진씨 등은 김씨를 협박해 20억원을 뜯어냈고, 이들의 계속된 돈 요구를 견디다 못한 김씨가 평소 친분이 있던 검찰 간부의 조언에 따라 진씨 등을 검찰에 고발했다. 하지만 검찰 수사 과정에서 자신의 횡령 및 사기 혐의가 드러나 7월16일 구속돼 김씨는 자기 무덤을 판 꼴이 됐다.
김씨는 지난해 초 연산동 재개발사업 시행사인 ㈜일건이 세무조사를 받게 되자 정 전 비서관을 동원, 정상곤(53) 당시 부산국세청장에게 부탁해 무마시켰다.
김씨 배후에 정권 실세가 있다는 사실을 안 정 전 청장은 탈세 방법까지 알려주는 친절까지 베풀었다. 물론 김씨는 그 대가로 지난해 8월26일 정 전 청장에게 1억원을 건넸고, 정 전 청장은 8월9일 구속됐다. 하지만 사건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 권력형 뇌물ㆍ청탁 비리로 확산
김씨가 정 전 청장에게 뇌물을 건네는 날 저녁식사 자리에 정 전 비서관이 동석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이 사건은 재개발비리에서 권력형 비리 사건으로 확대됐다. 결국 정 전 비서관도 김씨로부터 2,000만원을 받은 혐의로 10월18일 구속됐다.
사건은 정 전 비서관 구속에 이어 재개발사업 인ㆍ허가 업무를 맡은 부산시 및 금융계 비리에 대한 수사로 마무리되는 듯 했다.
그러나 며칠 뒤 참여정부 출범 당시 정권인수위에도 참여했던 전군표 국세청장이 정 전 청장으로부터 거액을 상납 받은 사실이 드러나면서 사건은 다시 급반전했다.
전 전 국세청장은 정 전 청장으로부터 인사청탁 대가로 8,000만원을 받고 이병곤 부산청장을 시켜 뇌물 사용처를 진술하지 말도록 회유한 사실이 드러나 41년 국세청 역사상 현직 청장 구속이라는 첫 기록을 남기며 참여정부의 도덕성에 치명상을 입혔다.
부산은행 간부와 시공사인 P사 간부 2명도 대출과 시공 참여 편의제공 대가로 뇌물을 받은 혐의가 드러나 구속되기도 했다.
부산지검은 이 사건에 검사 6명 등 42명의 수사팀을 투입, 5개월간 110명을 소환하고 20여 차례 압수수색을 통해 현직 국세청장 등 12명을 구속 기소하고 6명을 불구속 기소했다.
그러나 주요 고비 때 마다 수사 의지를 의심 받았고 뇌물 사용처 수사를 통한 윗선 개입 여부, 정ㆍ관계 등 전방위 로비 의혹을 규명하지 못했다는 지적도 받았다. 대신 뇌물사건의 경우 공여자 진술과 당시 정황증거만으로도 충분히 범죄 혐의 입증이 가능하다는 점을 공직사회에 각인시키는 성과를 남겼다.
부산=김창배 기자 kimcb@hk.co.kr
■ 형·동생 하던 정윤재·김상진씨, 법정서 "당신이…" 등 돌려
정윤재 전 청와대 의전비서관과 전군표 전 국세청장, 정상곤 전 부산지방국세청장, 김상진씨 등은 모두 부산구치소 내 3.3㎡(1평) 남짓한 크기의 독방에서 혹독한 겨울을 나고 있다. 시설이 노후한 부산구치소는 복도난방식이어서 추위에 취약하다.
부산구치소는 때 아닌 거물급(?)의 집단 수감으로 주목을 받았지만 구치소 내에서 이들이 대면하는 일은 없다는 게 구치소 측 설명이다. 구치소 측이 엄밀히 말해 사건 공범이랄 수 있는 이들이 수감된 사동(舍棟)을 분리, 식사시간은 물론 운동시간에도 마주치지 않도록 하고 있기 때문이다. 구치소 관계자는 이들의 수감 생활에 대해 “입소 후 시간이 지나면서 식사도 많이 하고 틈틈이 운동을 하는 등 잘 적응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러나 이들은 법정에서 대면할 때면 기소된 범죄사실을 놓고 첨예한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
한 때 ‘호형호제’하던 사이인 정 전 비서관과 김씨는 지난 17일 부산지법 301호 법정에서 열린 재판에서 2,000만원 뇌물수수의 사실관계를 놓고 날카롭게 맞섰다.
정 전 비서관은 “(김씨가 1,000만원을 전달했다고 주장한) 지난해 12월31일에는 많은 지인들과 집에 함께 있어 뇌물을 받을 처지가 아니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에 대해 김씨는 “당신이 먼저 전화를 해서 (뇌물을 전달하지 않고) 해를 넘기기가 어려웠다”고 맞받아쳤다. 김씨는 이날 “명품 넥타이 쇼핑백에 1,000만원씩 포장해 수천만원을 차 트렁크에 넣고 다니며 뿌렸다”며 ‘통 큰 로비’행태를 공개해 눈길을 끌었다.
이에 앞서 김씨는 지난달 2일 재판에서는 “내가 이명박 후보의 낙동강 전선을 3개월간 방어했다. 내 사건으로 정 전 비서관과 전 전 국세청장이 구속되는 등 공직사회가 맑아졌다. 내 이름을 (세상에) 알렸다”는 궤변을 늘어놓기도 했다.
부산지방국세청장 재직 시 직원들로부터 비교적 호평을 받았던 정 전 청장은 한 때의 실수를 크게 뉘우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씨는 11월9일 재판에서 “(김씨로부터 받은 1억원이 든) 돈가방을 택시 밖으로 내동댕이 치지 못한 것을 천추의 한으로 생각한다”며 고개를 숙였다. 검찰은 정 전 청장이 30여년간 공직자로 성실히 일해온 점과 혐의를 순순히 시인하고 죄를 뉘우치고 있는 점 등을 감안해 징역 5년에 추징금 1억원을 구형한 상태다.
전 전 국세청장은 최근 재판에서 자신이 피의사실을 인정하려 했던 사실을 부각시키려는 검찰의 직접신문에 대해 “구속과 장기형(최소 7년 이상 징역)이 겁이 나 한 때 자수감경을 고려했으나 곧 마음을 바꿨다”며 전면 부인했다. 전 전 청장은 “국세청 내에 상납 관행이 있느냐”는 검찰의 질문에는 “5∼6년 전에는 있었지만 참여정부 들어 없어졌다”고 답변하기도 했다.
부산=김창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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