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열과 함께 목이 아프다는 어린이를 데리고 어머니가 진료실에 왔다. 진찰해보니 편도염이어서 항생제를 처방했더니 어머니가 화들짝 놀란다. “항생제를 먹어야 해요?” “네” “아니 항생제는 나쁘잖아요?” 어머니가 반문하는 모습이 답답하기만 하다.
항생제 1호인 페니실린이 등장해 수많은 목숨을 건진 신화를 낳은 것이 불과 반세기 전이다. 그 이후 많은 항생물질들이 개발되었지만 그 고마움을 모르고 함부로 사용한 결과 내성균이 등장해 심각한 걱정거리가 되었다.
아무리 효과가 뛰어난 항생물질이라도 저항성을 가진 균이 살아남으면서 내성균이 생기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많은 이들이 “나는 독한 약을 많이 써서 보통 약에는 잘 안 듣는다”는 식의 이야기를 하곤 한다.
항생제 내성이란 어떤 사람이 한 항생제를 사용한 적이 있다고 해서 그 사람에게는 다음에 그 항생제를 써도 소용이 없다는 식의 이야기가 아니다. 어떤 지역사회에서 어떤 항생제를 많이 쓰면 확률적으로 내성을 가진 균이 많아지고, 그 결과 그 항생제를 한번도 써 본 적이 없는 사람이라도 그 균에 감염이 되면 항생제가 잘 듣지 않게 되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최근 국내 의료기관들의 항생제 사용에 대한 보도가 나가면서 이를 잘못 이해한 어린이 보호자들이 항생제를 마치 독약 대하듯 하거나, 심지어 처방약 중에서 항생제만 빼고 먹이는 일이 발생하기도 한다.
항생제와 비슷한 경우로, 아토피성 피부염을 가진 어린이들에게 병의 경과에 따라 스테로이드제가 포함된 연고나 로션을 처방해야 할 때가 있다.
그런데 스테로이드가 들어간 약을 독약 보듯 하면서 처방받기를 꺼리는 보호자가 있다. 일반인이 무분별하게 약을 남용하거나 오용하는 것에 주의를 촉구하는 것은 좋은 일이나, 스테로이드 제제를 처방하는 의사를 나쁜 의사로 보게 만드는 것은 문제다.
반대의 경우도 있다. 진료실에서 어머니들이 흔히 “구충제는 몇 살부터 매년 먹어야 합니까?”라고 묻는 경우가 있다. 구충제는 으레 먹는 것이려니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기생충도 없는 어린이에게 봄가을로 기생충 약을 꼭 먹여야 할지는 의문이다. 과거 채소 재배에 인분을 뿌리던 시절에는 기생충 감염이 많았다.
하지만 요즘엔 비료를 사용하기 때문에 기생충 감염경로 자체가 많이 차단되어 과거에 유행하던 회충 등 장내 기생충의 감염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2004년 기생충 감염 실태조사에 따르면 회충이 발견되는 비율(양성률)은 0.1%도 안 된다.
그러나 오히려 간담도암의 발생과도 연관이 있다고 알려진 간흡충(간디스토마) 감염 양성률은 2.4%나 된다. 이것은 민물고기를 날것으로 먹어서 걸리게 되며, 식생활 습관 때문에 줄어들지 않고 있다. 가끔 텔레비전 방송에서 강이나 호수에서 잡아올린 민물고기를 날것으로 먹는 장면을 그대로 방영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것은 국민들에게 먹거리를 소개하는 것이 아니라 병을 얻는 방법을 안내하는 위험한 행위일 수 있다. 강이나 호수의 물이 아무리 깨끗해 보이더라도 민물고기에 감염돼 있던 기생충 유충을 사람이 먹게 되면 병에 걸릴 수 있는 것이다.
국민의 알 권리를 지켜준다는 것은 이런 잘못된 지식을 깨우쳐 주는 것이다. 강가에 민물고기 횟집이 번창한다는 것은 21세기 초일류 병원들이 최첨단 의료를 행하는 나라에 어울리는 풍경이 아니다.
무엇이 국민 건강을 지켜주는 길인가를 되새겨보고 모든 국민이 옳은 지식을 가질 수 있도록 계도해나가는 책임은 전문가집단 뿐만 아니라 정부나 언론 모두에게 있는 것이다. 정부나 언론기관은 보도가 나갈 때 국민이 가지게 될 지나친 걱정이나 악영향을 잘 고려해야 한다.
의사가 마치 돈벌이를 목적으로 약을 마구 남용하고 오용하는 것처럼 보도한다면 국민들로 하여금 불필요한 걱정이나 잘못된 판단을 하도록 유도할 수 있는 것이다.
의사와 환자 사이에 신뢰가 쌓이지 않으면 병이 나을 수가 없다. 물건이 아닌 우리의 건강을 맡기는 환자와 이를 책임지는 의사가 서로 믿는 관계에서 최적의 진료가 행해질 수 있도록 깊은 성찰과 환경 조성이 아쉬운 때다.
신손문<대한소아과학회 이사ㆍ제일병원 소아과 교수>대한소아과학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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