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장사꾼은 자기 물건만 팔면 그만이지 파는 방법이나 상대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다. 유능한 장사꾼 출신인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에게도 이런 흑묘백묘(黑猫白猫)의 기질이 있는지 그의 정책은 지극히 실용주의적이다.
이 당선자는 대선에서 승리한 다음 날인 20일 첫 내외신 기자회견에서 '진보와 보수를 뛰어넘는 실용주의적 대외 정책'을 내놓았다.
그는 먼저 대북 정책을 설명하면서 "북한이 핵을 폐기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선을 그었다. 그리고 이 조건이 충족되면 엄청난 인센티브가 있을 것임을 천명했다. 그의 말에 100%, 아니 200% 동의한다.
참여정부의 정책은 북한에게 줄 것은 다 주면서 핵 문제나 국군포로ㆍ납북자 문제에서는 하나도 얻지 못했다는 점에서 크게 잘못된 것이었다.
그렇다고 냉전시대로 확 돌아가 북한과 죽기 살기로 싸우는 것도 불가능하다. 이 당선자의 대북 정책은 참여정부와 냉전시대 대북 노선 사이에서 적절한 자리 매김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는 대미 외교에서도 실용주의 원칙을 강조했다. "한미동맹은 신뢰를 바탕으로 공동의 가치와 평화를 새롭게 다지겠다"면서 "또 다원적 국제관계 속에서 활발하고 지혜로운 외교를 하겠다"고 말했다.
앞부분의 언급은 소원해진 한미동맹을 강화하겠다는 의미고, 뒷부분은 무조건 미국에 끌려가는 것이 아니라 국익 및 다른 강대국과의 관계도 고려해 사안별로 입장을 정리하겠다는 뜻이다. 결국 대미 관계 역시 참여정부의 대미 동등 관계 추구 노선과 과거의 대미 추종 노선 사이에서 위치를 잡겠다는 얘기다.
그러나 이런 대미 외교 방식은 다소 문제가 있을 수도 있다. 북한은 우리보다 경제력이 약하고 외교력도 땡깡 부리는 것 이외에는 별 볼 일이 없어 우리가 유화책을 쓰든, 강경책을 사용하든, 아니면 그 중간쯤의 입장을 취하든 이를 관철시키는 것이 가능하다. 그러나 세계 유일의 패권 국가인 미국은 다르다.
미국에게 참여정부의 대미 동등 관계 추구 노선(실제로는 주인과 종의 관계에서 형님과 아우의 관계 정도로 가자는 것인데)에서 후퇴해 이전 시대 대미 추종 노선과의 사이 어느 지점에서 서로의 관계를 정립하자고 하면 좋다고 웃으며 들어 주지는 않을 것이다. 과거 주종 관계 시대로 되돌아가자고 할 게 분명하다. 힘이 약한 우리로서는 한 번 밀리면 끝장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반미면 어때"라고 공공연히 말하고 '동북아 균형자론'을 제안해 미국의 감정을 자극했기 때문에 이라크 파병을 하고도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다는 비판을 듣는다.
사실 노 대통령은 실익도, 현실성도 없는 것을 부득부득 우기는 버릇이 있었다. 하지만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의 경우는 노 대통령식 대응법이 좀 통했다. 참여정부가 국익이 직결된 이 협상에서 막판에 "안 할 수도 있다"는 말까지 흘리면서 강력히 대처하지 않았다면 현 수준의 FTA 타결은 꿈도 꿀 수 없었다.
이 당선자는 쓸데없는 것에 집착하는 노 대통령의 전철은 밟지 말아야 하지만 방위비 분담, 미국산 쇠고기 수입, 한미 FTA 비준, 또 이 당선자가 주장하고 있는 전시 작전통제권 이양 시기 연장 같이 우리의 이익이 직접 걸린 문제는 노 대통령처럼 미국에 대들어야 한다. 필요하다면 이 당선자가 포플리즘이라고 저어해 온 시민사회와 반미 여론도 동원해야 한다.
이은호 정치부 차장 leeeun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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