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 장갑의 마술사’ 김동엽(작고) 감독은 ‘어필의 명수’였다. 그는 심판과 마주하면 “딱 1분만 떠들고 들어가겠다”고 양해를 구한 뒤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일종의 ‘쇼’였다. 프로스포츠에서 감독의 어필도 하나의 볼거리다. 김 감독의 어필을 보기 위해 경기장을 찾는 팬들도 있을 정도였다.
겨울코트가 시끄럽다. 하루도 바람잘 날 없다. 육두문자에 가까운 거친 표현들이 여과 없이 쏟아지고, 시도 때도 없는 호루라기 소리에 경기는 중단되기 일쑤다. 상황이 이런 데도 서로 “나는 모른다”는 식이다
24일 현재 여자프로농구(WKBL) 49경기에서 8개의 벤치 테크니컬파울이 나왔다. 지난 시즌엔 60경기에서 8개가 기록됐다.
거의 매 경기 심판들과 감독들의 ‘싸움’이 벌어지는 마당에 테크니컬파울은 당연한 결과다.
삼성생명 정덕화 감독은 구리경기에서만 테크니컬파울을 3개나 받았고, 신한은행 임달식 감독은 패한 뒤 인터뷰 때는 예외 없이 심판판정에 불만부터 드러낸다.
‘판정 불복 현상’은 단일리그 전환과 무관하지 않다. 예년 같으면 여름과 겨울 두 차례 기회가 있었지만 이젠 1년에 한 번뿐이다. 감독들로서는 한 경기라도 놓칠 수 없다. 마음이 급하다 보니 심판판정에 민감해질 수밖에 없다.
심판들도 잘했다고 볼 수만은 없다. 올 시즌 우리은행과 신세계는 WKBL에 심판설명회 개최를 한 차례씩 요구했다. 심판설명회는 판정에 승복할 수 없으니 납득할 수 있게 설명해 달라는 구단 측의 ‘반발’이다.
WKBL은 지난 10일 신세계-국민은행전의 심판 3명에게 3개월 감봉조치와 2주일간 출전정지 징계를 내렸다.
WKBL 스스로 심판판정에 문제가 있었음을 시인한 것이다. 한 현역 감독은 “벤치에서 가만히 있으면 판정이 상대쪽으로 흐르는 경우가 많다. 끊임 없이 소리를 질러야 심판이 제대로 본다”고 털어놓았다.
올 시즌 WKBL은 여러 면에서 성공을 거두고 있다. 케이블 TV에선 KBL 못지않은 시청률이 기록됐다.
용병을 없앴지만 오히려 재미 있다는 평가도 받았다. 하지만 여전히 경기운영은 매끄럽지 못하다. 아니, 오히려 예전보다 후퇴했다고 봐야 한다. 감독, 심판, 연맹 모두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최경호 기자 squeez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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