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 2008학년도 수능시험 물리 Ⅱ의 11번 문제에 대해 복수 정답을 뒤늦게 인정한 것은 국가기관이 얼마나 무책임하고 나태한지 다시 한 번 보여준 사례였다. 인간이 하는 일이니 출제를 잘못할 수는 있다. 진짜 문제는 그런 것보다 잘못을 알았을 때 대처하는 방식이 잘못된 것이다.
수능 시험 직후인 한 달여 전부터 수험생들이 답이 두 개가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했다. 그러나 평가원은 출제와 무관한 관련 학회 내지는 전문가들에게 재검증을 의뢰하는 등의 진지한 검토를 하지 않은 채 문제가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 기구의 존재 이유와 하는 일의 첫 번째는 오류 없고 엄정한 평가와 출제다. 그런데 몇 년 전에도 출제 오류로 말썽이 난 적이 있었다. 지난달에는 경기 김포외고의 시험지 유출 사건으로 고교입시에 일대 파장이 빚어졌다. 평가원은 당연히 더 긴장했어야 한다.
평가원이 허송세월하는 사이 수험생들이 먼저 나서서 한국물리학회에 출제 오류 여부를 질의했고, 학회는 복수 정답이 가능하다는 의견을 공개적으로 제시했다. 그런데도 평가원은 교육과정을 기준으로 하면 이상이 없다는 희한한 논리로 버티다가 3일 만에 꼬리를 내렸다.
처음 문제가 제기됐을 때 진지하게 대처했더라면 파장을 크게 줄일 수 있었다. 또 그때 판단을 잘못 했더라도 물리학회가 의견을 냈을 때 수긍만 했다면 이렇게까지 대입 전형에 엉뚱한 혼란을 불러오지는 않았을 것이다.
애초부터 별 일 아니라는 식으로 대응한 것은 나태함이며 기관의 체면과 비난을 의식해 교육 과정 운운하며 억지를 부린 것은 무책임이다.
이 사태의 책임을 지고 교육과정평가원장이 스스로 사퇴했다. 그 윗 선의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주장도 있지만, 이미 저물어가는 이 정부에 더 이상의 주문을 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차기 정권은 국가기관의 구조적 문제점을 파악해 개선하고 잘못된 행정을 한 사람들에게는 어떻게든 철저하게 불이익을 주는 방식으로 대수술을 해야 한다. 교육과정평가원에만 해당되는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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