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한해도 말의 성찬이 이어졌다. 대선의 해였기 때문인지 정치권은 독설에 가까운 막말을 쏟아냈고 비리 연루 인사들은 곧 드러날 거짓말을 뱉어 국민을 짜증나게 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몇몇 기자들이 죽치고 앉아 기사의 흐름을 주도하고 있다”며 기자실통폐합과 취재 선진화를 추진했다. 기자들이 반발하고 대선 후보들이 ‘기자실 원상복구’를 공약으로 걸자 “기자실에 대못질을 해 차기정부에 넘기겠다”고 말해 언론과의 불화를 끝내 극복하지 못했다.
노 대통령은 또 변양균 전 청와대 정책실장, 정윤재 전 청와대 의전비서관 등의 비리의혹이 불거지자 “깜도 안 되는 의혹이 춤을 추고 있다” “소설 같은 얘기”라고 두둔했다가 그들이 사법처리되자 “내 스스로의 판단에 대한 자신이 무너졌다”며 물러섰다.
1년 내내 BBK 의혹에 시달린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는 “한방이면 보낼 수 있다”는 여권의 공격에 “한 방이 아니라 헛방”이라고 받아 쳤다.
이명박 당선자는 그러나 유세 도중 ‘마사지 걸’ 발언으로 여성단체로부터 적지 않은 항의를 받았다. 임채진 검찰총장은 BBK사건을 둘러싼 논란이 계속되자 11월 26일 취임식에서 “있으면 있다 하고 없으면 없다고 하겠다”며 나름의 수사 원칙을 밝혔다.
이명박 당선자의 측근인 이재오 전 한나라당 최고위원은 “한나라당의 분열세력을 좌시하지 않겠다”고 했다가 박근혜 전 대표로부터 “오만의 극치”라는 비판을 들어야 했다. 그 뒤 한나라당에서는 한동안 “좌시하지 않겠다”가 유행어가 됐다.
그런가 하면 대통합민주신당 당내 경선이 이뤄지던 9월 27일 이해찬 후보는 TV토론 도중 정동영 후보가 “이 후보와 저는 서울대 동기로…”라고 하자 “아, 그 친구 이야기 좀 그만하세요. 공적인 자리에서…”라며 화를 버럭 내 시청자를 머쓱하게 만들었다.
7년 만에 이뤄진 남북정상회담에서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은 회담 일정이 늦어지자 노무현 대통령에게 일정을 하루 연장할 것을 주문하며 “대통령이 결심 못하십니까”라고 직설적으로 발언했다.
남측 언론이 제기한 건강 이상설에 대해서는 “기자가 아니라 작가인 것 같다”고 응수했다.
고위 공직자의 거짓말 행진도 이어졌다. 변양균 전 정책실장은 신정아씨와의 관계를 부인하며 “나는 공무원 30년을 바르게 한 사람”이라고 맞섰다.
전군표 전 국세청장은 “한편의 거대한 시나리오가 짜여지는 것 같다”며 혐의를 부인했지만 결국 뇌물수수혐의로 구속 수감됐다.
박은조 분당샘물교회 담임목사는, 배형규 목사가 아프가니스탄에서 피랍돼 목숨을 잃었는데도 “앞으로 3,000명의 배 목사가 나와야 한다”고 발언해 국민을 어리둥절하게 했다.
이건희 삼성 회장은 연초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단 회의에서 “쫓는 중국과 앞서는 일본 사이에 낀 샌드위치”라고 한국 경제의 위기 상황을 표현했다.
조석래 전경련 회장은 제주에서 열린 하계포럼에서 “차기 대통령은 경제대통령이 돼야 한다”고 밝혀 사돈인 이명박 당시 한나라당 후보를 지지한 것 아니냐는 의혹을 받았다.
보복 폭행으로 구속된 김승연 한화 회장은 검찰 심문에서 “복싱에 대해 잘 아시느냐. 복싱에서처럼 ‘아구를 여러 번 돌렸다’는 거다”며 폭행 당시 상황을 실감나게 설명했다.
올해는 또 유명인사의 학력 위조 파문이 이어졌는데 교수신문은 이를 빗대 나도 속이고 남도 속인다는 뜻의 자기기인(自欺欺人)을 올해의 사자성어로 꼽았다.
가수 김장훈씨는 “행복해지기 때문에 기부한다”고 말해, 거친 발언에 지친 우리의 마음을 포근하게 했다. 그는 10년간 30억원 정도를 기부했다.
한창만 기자 cmha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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