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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공부에 짓눌린 초등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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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공부에 짓눌린 초등학생

입력
2007.12.24 1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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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그때가 그립다.”

최근 초등학교 6학년인 둘째 아이가 3학년 때를 돌아보며 한 말이다. 내가 보기에는 3학년이나 6학년이나 그게 그건데, 녀석이 3년 전을 그리워하는 것은 그때는 시험이 없었기 때문이다. 아이는 5학년 때부터 한 학기에 두 번씩 학교 시험을 보았는데 그것이 부담스러웠던 모양이다. 그렇다고 공부를 많이 하는 것도 아니다.

중학교 입학을 앞두고 있기 때문에 제 엄마와 집에서 영어 공부하는 것 말고는 따로 하는 공부가 없다. 피아노학원도 다니는데 그것은 제가 좋아 하는 일이다. 그런데도 나이에 맞지 않게 옛날을 그리워하는 것을 보면서 정말로 공부 열심히 하는 같은 나이의 아이들이 떠올랐다.

불과 며칠 전 겨울방학을 시작하기 전까지만 해도, 밤 10시가 넘어 학원 버스에서 내리는 초등학생이 한 둘이 아니었다. 깜깜한 밤중에 엄마의 마중을 받으며 걸어가는 녀석들을 보면서 마음이 착잡했다. 그 나이의 내 또래들은 밤 9시면 이불 속에 들어가 있었다.

지금 많은 전문가들이 대학 입시에 정신을 쏟고 있지만, 내가 보기에 초등학생의 과도한 학습 역시 방치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초등학생 공부 덜 시키기 캠페인이라도 해야 할 것 같다. 아이들은 학교를 두 번 다니는 것과 같다. 대부분의 아이들이 학교 마치고 학원으로 달려간다. 학원 숙제는 왜 그리 많은지.

학교에서 학원 숙제 하는 아이들이 많은데 잘 모르는 것은 공부 잘하는 친구에게 풀어달라고 애걸한다. 상당수는 제 학년보다 1, 2년 앞선 중학교 영어, 수학을 공부하는데 얼마나 이해하는지 모르겠다.

개인적으로는 아이들이 그런 것에 저항하지 않는다는 사실도 안타깝다. 그렇게 자랐기 때문인지 학교를 마치면 학원에 가고, 아무리 많아도 학원 숙제는 해야 하며 심지어 친구와 노는 것도 부모가 짜주는 시간표에 맞춰야 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긴다. 심하게 말하면 공부 기계, 시험 기계로 자라는 것이다.

내가 볼 때 이렇게 된 가장 큰 이유는 부모의 욕심이다. 어찌 보면 제 자식이 가장 똑똑하고 가장 공부 잘한다고 생각하는 게 당연하다. 하지만 조금만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부모가 생각하는 특목고-명문대 코스는 현실적으로 그 문이 매우 좁다. 학교별 편차가 있겠지만, 초등학교 한 반에서 한 두 명이나 갈 수 있을까.

그런데도 부모들은 제 자식이 그 한 두 명에 포함될 것이라고 확신하는 듯 하다. 그래서 조금만 공부를 잘 한다 싶으면 아이를 그냥 내버려두지 못한다. 학교 시험 잘 보면 게임기 사주겠다고 유혹하면서 시험을 매개로 아이와 물질적 거래까지 시도한다. 부모가 공부를 이유로 아이에게 배금의식을 심어주는 것이다.

초등학교에 지금과 같은 광풍이 분 데는 특목고가 큰 영향을 미쳤다. 설립 목적은 그럴 듯 했을 텐데, 그것은 오간 데 없고 명문대 진학의 징검다리가 됐다. 특목고가 그렇듯, 부모들의 밑도 끝도 없는 욕망이 들끓는 한 그 어떤 교육 정책도 제 효과를 내기 어렵다.

따라서 새 정부는 부모의 욕심을 억제하는 교육 정책을 취해야 한다. 적어도 초등학생만은 그 끔찍한 경쟁의 대열로 내몰지 말아야 한다. 그런데도 이명박 당선자측은 대입 자율화, 자율형사립고 확충 등을 내세우고 있다. 그런 정책이 과도한 욕심을 잠재우기는커녕 도리어 부추길 것 같아 큰 걱정이다.

박광희ㆍ피플팀장 kh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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