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 기업들은 경기가 좋아져도 생산량을 늘리기 어렵다. 내년부터 환경물질 배출 허용량을 초과해 생산할 수 없는 탓이다. 허용 기준치를 줄이는 신기술로 생산량을 늘릴 수는 있다. 그런데 미세먼지는 이미 99%를 감축 시켜 배출하고 있어 더 줄이는 데 한계가 있다. 칠레와 우리나라에만 있는 미세먼지 규제는 생산규제로 이어지고, 기업은 경기순환을 반영한 투자를 막고 있다.
#상장사들은 경영권 방어를 위해 투자해야 할 돈을 끌어다 쓴다. 자사주 취득 외엔 달리 적대적 M&A공격으로부터 경영권를 지킬 수단이 없는 탓이다. 지난해 상장기업들이 자사주 취득에 지불한 돈은 7조3,000억원. 올해 1ㆍ4분기에도 3조5,000억원이 집행됐다.
사실 노무현 정부 하에서 황당무개한 ‘불량규제’들은 상당수 제거됐다. 적어도 양적으론 규제완화에 앞장선 ‘친기업 정부’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재계는 현 정부를 친기업적으로 평하지 않는다. 이른바 출총제, 수도권공장증설억제, 경영권방어수단, 금산분리 등 기업투자와 직결된 ‘핵심규제’들이 그대로 남아있거나, 오히려 강화됐기 때문이다.
재계가 이명박 당선자를 갈망한 배경에는 이런 ‘핵심규제’에 대한 완화 기대감이 깔려있다. ‘경제살리기’의 역사적 소임이 부여된 이 당선자로선 규제완화에 전향적으로 나서야 한다.
왜 규제완화인가
규제는 유기체다. 정부가 존재하는 한 규제는 생겨나기 마련이고, 한번 생겨난 규제는 ‘자생력’을 얻어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다. 정부가 자신이 만든 규제를 스스로 없앤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때문에 규제는 정권차원의 관심과 결단이 없으면 불가능하다.
규제의 대상은 기업이다. 규제가 많을수록 기업이 불편해지는 것은 당연하다. 특히 공무원을 위한 규제, 특정부처의 존립근거가 되는 규제, 단순히 시간을 끄는 규제들은 당연히 사라져야 한다. 이른바 ‘불량규제’들이다. 한 재계인사는 “다른 나라에선 투자유치와 고용창출을 위해 하나라도 규제를 없애고 아예 공무원들이 기업을 위해 ‘왕진’을 다니는 세상이다”라며 “그런데 우리나라에선 아직도 책상에 앉아 기업이 낸 서류를 차일피일 끈다”고 말했다. 공무원은 시간이 많을지 몰라도, 기업에겐 1분1초가 돈이다.
핵심규제 논란
문제는 이해관계가 복잡하고, 철폐할 경우 다른 가치가 훼손되는 이른바 ‘핵심규제’들이다.
기업들의 문어발식 확장을 막기 위한 출자총액제한제, 오너와 경영진의 독주를 막기 위한 경영권보호 장치배제, 산업자본의 사금고화를 피하려는 금산분리, 지역균형발전과 수도권 경제력집중을 줄이기 위한 수도권공장증설억제….
한국경제를 ‘규제제로’의 나라로 만들 수는 없다. 이런 핵심규제들은 한국경제의 ‘경험칙’에서 나온 것들로, 나름대로의 존재이유를 갖고 있다. 잘못 없앴다가는 더 큰 희생과 비용을 치를 수도 있다.
하지만 핵심규제라도 금과옥조는 아니다. 경제시스템이 바뀌었고 기업들도 바뀌었는데 핵심규제라고 해서 10년전, 20년전 골격을 그대로 지키는 것은 분명 문제다.
이명박 당선자는 핵심규제들을 원점에서 재검토해야 한다. 그래서 두어야 할 규제인지, 없애야 할 규제인지 냉정하게 ‘옥석’을 가려내야 한다. 규제는 선악도, 좌우의 문제도 아니다. 오로지 실용의 관점에서 기업활동과 국민경제의 건전성에 모두 도움이 되는 쪽으로 결론지어야 하는 것이다. 최병선 서울대행정대학원장은 “우리나라에서 규제는 철폐와 완화, 복원 및 강화, 다시 규제 완화와 철폐의 순환현상을 보여왔다”며 “이젠 적어도 악순환을 막기 위한 노력은 필요하다”고 말했다.
양이 아니라 질
규제 몇 개 고치기보다 규제 시스템을 바꾸는게 더 중요하다는 지적도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이와 관련, 규제개혁의 방향을 ‘더 나은 규제’, 다시 말해 규제의 질에 둘 것을 주문하고 있다. 무조건적 규제개혁은 대안이 될 수 없으며, 규제를 실용성 있게 재설계하라는 것이다. 김관보 가톨릭대 교수는 “진정한 규제개선은 경쟁과 규제의 조화 속에서 이뤄져야 한다”면서 “경쟁자가 아닌 경쟁과정을 보호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규제개혁에는 시기가 있다. 세계은행(IBRD) 조사결과, 뚜렷한 규제개혁성과를 낸 나라는 정부출범 15개월 이내에 85%의 규제개혁을 단행했다. 김대중 정부는 집권 초기 2년 동안 기존 규제의 약 50%를 덜어내는 대수술을 했는데, 이 시기의 규제개혁은 OECD가 ‘단두대 접근’이라고 부를 만큼 혁명적이었다. 반면 노무현 정부는 집권초기 ‘작은 정부’보다는 ‘할 일은 하는 효율적인 정부’를 주창하다 뒤늦게 규제개혁에 눈을 돌려 효倖?반감시켰다.
이명박 정부의 규제개혁 성과 역시 첫 1년에 달려있다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이태규 기자 tglee@hk.co.kr
■ 이렇게 풀어보자… 전문가제언
● 세밀한 전략으로 초기에 '강공'을
규제개혁은 만만한 일이 아니다. 세밀한 전략을 가지고 정권초기에 ‘강공’을 펴야 성공한다. 그 지향점은 일자리 만들기와 기업투자에 두어야 한다. 참여정부도 일자리와 투자를 늘리겠다고 했지만 말에 그쳤다.
일자리를 만들려면 수도권 규제를 푸는 게 우선이다. 경기도에 따르면 이 규제만 완화돼도 54조원이 투자되고 일자리 20만개가 늘어난다. ‘큰 손’인 대기업의 투자를 유인하려면 경제력 집중을 막는 출자총액제한제 등을 완화하고, 토지이용규제도 정리해야 한다. 글로벌 경쟁체제에서 기업들은 토지와 인력비용이 싼 곳을 선택하게 마련이다. 서울 강남에 60~70층 아파트를 지으면 집값도 안정되고 거품도 없앨 수 있다. 이렇게 해서 일자리가 돌아가고, 경제가 회복된 뒤 노동유연성을 확대하는 노동개혁에 드라이브를 걸어야 한다.
그런 다음 우리 경제를 먹여 살릴 서비스 규제를 풀어야 한다. OECD국가들의 GDP에서 제조업 비중은 이미 20% 미만에 불과하고, 서비스 부문이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서비스 분야에는 창의적인 노동자가 필요한 데, 이는 교육개혁과 연결된다. 경제가 어려운 것도 따지고 보면 각계 선두에 선 1%가 잘못하기 때문이다. 잘 하는 사람이 앞에 서도록, 경쟁을 촉진하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또 규제강화가 미덕이 돼 버린 식품, 환경 등 사회적 규제를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게 합리화해야 한다. 삼성전자가 공장을 짓는데 소방규제만 합리화해도 72억원이 절약된다. 규제개혁은 재계만의 목소리가 아니며 꼭 기업에 유리하다는 보장도 없다. 솔직히 이런 개혁이 없다면 차기정부는 지금 정부와 다를 게 없다. 그러면 어느 기업이 투자하겠는가.
분명한 것은 규제개혁이 필요조건이지 충분조건이 아니라는 점이다. 여건이 조성된 뒤에는 공무원들이 기업을 쫓아다니며 민원 해결사를 자처해야 투자가 일어나는 것이다.
이주선 한국경제연구원 기업연구본부장
● 선진국 규제철폐 사례서 배워라
세계는 기업활동에 유리한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경쟁하고 있다. 선진국은 물론 사회주의를 경험한 동구권도 규제개혁의 경쟁대열에 합류한 상태다. 러시아와 중국은 OECD의 선진 프로그램에 따른 규제개혁에 동참했으며, 영국 호주 네덜란드는 정부내 규제개혁 조직을 대폭 늘려 모든 분야의 규칙과 규제를 재검토 중이다.
OECD 국가 중 규제가 가장 약한 영국은 기업에 지워지는 행정부담을 줄이기 위해 용역비 210억원을 들여 16개 부처의 행정부담 정도를 측정해 감축계획을 수립했다. 2005년 영국 GDP의 1.4%(25조2,000억원)에 달하는 행정부담을 2010년까지 6조4,000억원으로 줄인다는 계획이다.
미국은 규제품질과 영향까지 분석하는 ‘세련된 규제(Smarter Regulation)’에 초점을 두고 있다. 조지 W 부시 행정부에서 신설된 43개의 중요규제 비용은 지난 20년 평균보다 47% 적고, 편익은 이전 8년보다 두 배 이상으로 추정되고 있다. 호주는 규제를 신설할 때 기업비용산출을 의무화하고, 중복규제를 막기 위해 5년 시한의 일몰규정을 적용하거나 5년마다 그 타당성 검토를 하도록 했다.
각국이 규제개혁에 매달리는 이유는 글로벌 경쟁체제에서 규제를 푸는 것만이 경제효율과 투자기회를 확대시켜 일자리를 늘리고, 궁극적으로 경제를 성장시키기 때문이다. 일례로 아일랜드는 대기업들이 반대할 정도의 규제완화 및 철폐를 강행하면서 1인당 국민소득이 2만달러에서 10년도 안돼 세계6위인 4만달러로 올라갔다. 세계에서 가장 낮은 법인세율(12.5%), 높은 노동유연성 등 규제의 벽이 낮아지자 1990~2006년 한국의 3배가 넘는 2,117억 달러의 해외직접투자가 유입됐고, 경제가 연평균 7.6%의 고도성장을 구가한 덕분이다.
김신 행정연구원 규제연구센터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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