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지난 12년 동안 매일 아침 정각 7시에 애틀랜틱 애브뉴와 클린턴 스트리트가 만나는 모퉁이에 서서 정확하게 같은 앵글로 딱 한 장씩 컬러사진을 찍어 왔다. 그렇게 찍은 사진들이 이제는 4,000장이 넘었다."
크리스마스면 생각나는 폴 오스터(60)의 소설 <오기 렌의 크리스마스 이야기> 는 이 남자 오기 렌이 작가에게 들려준 사연이라는 형식으로 돼 있다. 뉴욕 브루클린의 담배가게 주인 오기는 왜 12년 동안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서 사진을 찍고 있을까? 4,000장이 넘는 똑 같은 배경의 사진들 속에는 무엇이 담겨 있을까? "나는 깨달았다. 오기는 시간을, 자연의 시간과 인간의 시간을 찍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는 세상의 어느 작은 한 모퉁이에 자신을 심고 자신이 선택한 자신만의 공간을 지킴으로써 그 모퉁이를 자기 것으로 만들기 위해, 그 일을 해내고 있었다." 폴 오스터는 소설 속에서 이렇게 쓰고 있다. '아름답게 디자인된 예술품'이란 평가를 받는 폴 오스터 소설의 진가는 이 짧은 작품으로도 여실히 확인된다. 오기>
원래 이 소설은 1990년 크리스마스 날 뉴욕타임스 특집란 전면에 게재된 단편이다. '조이 럭 클럽'의 홍콩 출신 영화감독 웨인 왕(58)은 이날 집에 신문이 배달되지 않자 가판대로 가서 뉴욕타임스를 샀다가 우연히 이 소설을 읽고 영화화를 결심, 폴 오스터를 만난다. 그리고 4년 후 만들어진 영화가 하비 카이틀, 윌리엄 허트, 포레스트 휘태커 등 쟁쟁한 연기파들이 출연한 '스모크'다. 웨인 왕은 '스모크'로 1995년 베를린영화제 은곰상을 차지했다.
폴 오스터가 영화를 위해 한층 정교하게 각색한 시나리오는 대도시에서 외롭게 살아가는 인간군상의 얽히고설킨 운명과 따뜻한 인간애, 그리고 영화 제목처럼 담배연기 같이 흩어져버리는 삶에 대한 애틋한 향수를 담아 잔잔하면서도 긴 감동의 여운을 남긴다.
하종오 기자 joha@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