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에서 ‘당ㆍ정ㆍ청 분리와 일체화 중 어떤 것이 바람직한가’를 두고 한창 논란이 벌어지고 있지만 이는 겉으로 드러난 명분일 뿐이다. 갈등의 본질은 ‘내년 4월 공천권을 누가 더 많이 갖느냐’를 둘러싼 이명박 당선자와 박근혜 전 대표 진영 간 힘겨루기라고 봐야 한다.
현행 당헌ㆍ당규에 명시된 당권과 대권 분리 규정을 손질하면 대통령이 당 운영에 합법적으로 개입할 수 있다. 이 경우 이 당선자가 직접 공천을 챙겨 이 당선자 진영이 공천권을 사실상 독점할 가능성이 커진다. 특히 대통령과 국회의원 임기 상 내년 4월 총선 뿐 아니라 2012년 19대 총선 공천권까지도 걸린 문제이다.
박근혜 전 대표 진영이 지난 주 이 당선자측 일각에서 나온 당ㆍ정ㆍ청 일체화 주장에 펄쩍 뛴 이유도 사실 이 때문이다. “개혁 공천 등의 명분을 내걸어 우리측 의원들을 공천에서 싹 배제해 버리려는 의도가 아니냐”는 것이다.
당권ㆍ대권 분리 문제는 자칫 당 분열까지 이어질 수 있을 정도로 폭발력이 크다. 의원들의 ‘생존’이 달린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 당선자 진영이 당권ㆍ대권 분리를 밀어 붙일 경우 친이, 친박 진영은 물론 각 세력 간에 물고 물리는 이전투구가 벌어질 수 있다. 최악의 경우 박 전 대표측에서 ‘당권ㆍ대권 분리 원칙의 정당성’ 등을 명분으로 집단 탈당을 선택할 수도 있다. 이 경우 4월 총선에서 압승해 집권 초기 국정을 안정적으로 이끌어 간다는 이 당선자의 구상에 차질을 빚게 된다.
이 당선자는 24일 강재섭 대표와의 회동에서 “당권ㆍ대권 분리 원칙을 훼손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정리, 서둘러 논란을 봉합한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다. 박 전 대표 진영도 당장은 논란이 커지는 것을 원하지 않는 분위기다. 하지만 이 당선자 진영이 일찌감치 속내를 내비친 이상 휴전상태는 언제든 조그만 불씨로도 개전(開戰)으로 인화할 수 있는 상황이다.
최문선 기자 moonsu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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