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영어사전 출판사인 메리암-웹스터가 얼마 전 올해의 단어로 ‘w00t’를 선정했다는 뉴스가 있었다. 이 출판사의 인터넷사전에 가장 많이 등장한 20개의 단어 중 온라인투표 1위를 차지한 이 용어는 네티즌들이 주로 사용하는 것으로, ‘야호’ ‘만세’라는 뜻의 감탄사다.
영화 ‘프리티 우먼’에서 줄리아 로버츠가 폴로 경기를 보며 연발한 ‘woot’에 착안, 알파벳 o만 숫자 0으로 대체한 것이란다. 지난 해 이 출판사는 부시 대통령처럼 ‘증거나 논리도 없이 자신이 믿고 싶으면 진실로 밀어붙이는 행태’를 꼬집는 ‘truthiness’를 맨 위에 올렸다.
▦ 일본에서는 올해의 한자로 ‘위(僞)’가 선정됐다. “식품안전 분야에서 세계 최고를 자부하던 나라에서 불량식품으로 인한 파문이 끊이지 않은 한 해”였다는 것이 선정기관인 한자능력검증협회의 설명이다.
명문 제과업체와 전통요리 전문업체 등이 원료를 속이거나 유통기한이 지난 원료를 사용한 사실에 대한 일본사회의 충격을 반영, ‘식(食)’과 ‘허(噓)’가 그 뒤를 이었다. 반면 후쿠타 일본 총리는 민주당에 제의했던 자신의 대연정 구상이 외부로 유출된 것에 대한 배신감을 표출, 올해의 세태 변화를 직시하는 한자어로 ‘신(信)’을 들었다.
▦ 때마침 중국 네티즌들은 정해년 세태 변화를 집약하는 단어로 ‘(창漲)’을 꼽았다. 이 어휘는 본래 ‘물이 불어나 넘치다’는 뜻으로 쓰이는데, 이번엔 자고 나면 오르는 물가를 지칭하는 표현으로 등장했다.
돼지고기와 채소ㆍ라면에서부터 부동산ㆍ주식에 이르기까지 오르지 않은 것이 없어 중국인들은 올해 내내 이 단어를 입에 달고 살면서 불평과 불만을 토로했다고 한다. 9월부터 3개월 연속 물가 상승률이 목표치의 두 배인 6%대를 기록했으니 11%대의 성장률을 마냥 자랑하기도 어렵게 됐다. 그럼 한국의 한해를 요약하는 말은 뭘까.
▦ 지난 해 ‘밀운불우(密雲不雨ㆍ구름은 빽빽하나 비가 오지 않는 상태)’라는 생소한 글귀로 사람들을 불편하게 했던 교수신문이 올해는 ‘자기기인(自欺欺人ㆍ자기를 속이고 남도 속인다)’이라는 사자성어로 한 해를 규정했다. 학력 위조, 논문 표절, 금력 폭력, 재벌 비리, 권력 부도덕 등으로 내내 피곤했던 국민들의 마음을 압축했단다.
그러나 눈길은 후보로 거론된 ‘수락석출(水落石出ㆍ일의 흑막이 말끔히 걷혀 진상이 명백히 드러남)’에 간다. 오늘은 어제 죽은 사람들이 그토록 열망하던 내일이란다. 내년 말 우리는 어떤 단어를 떠올릴까. ‘망(望)’이나 '희(希)'면 좋겠다.
이유식 논설위원 ys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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