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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병태 칼럼] 지식인 사회의 몽매한 줄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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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병태 칼럼] 지식인 사회의 몽매한 줄서기

입력
2007.12.24 1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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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국제교류재단이 월간 웹진과 계간 저널로 발간하는 영문 에 옮겨 실을 글을 국내 주요 신문 잡지 저널 및 학술지에서 고르는 일을 돕고 있다. 매달 한차례, 여러 분야 지식인들이 우리 사회 주요 이슈를 다룬 글을 다시 찾아 읽으면서 늘 아쉽게 여긴 게 있다.

유수한 국제기구와 150개국 대학 연구소 등에 배포하고 많은 한국 연구자들이 참고하는 의 성격에 어울리게, 이념이나 정치적 편견 등이 두드러지지 않는 글을 찾기가 갈수록 어려운 현실이다.

■ 부끄러운 ‘우물 안 싸움’ 풍토

이념이나 정치적으로 그저 중도ㆍ중립적인 글을 찾는 건 물론 아니다. 우리 사회와 비할 수 없이 이념적 지향이 다양하고 폭 넓은 국제사회에 한국의 면모를 알리는 공간인 만큼, 국내 어떤 매체보다 열린 안목으로 좋은 글과 논문을 골라야 한다고 믿는다. 보수ㆍ진보 이념이나 정치 지향의 차이에 관계없이 실팍한 현실 진단과 논리를 갖춘 글을 소개해야, 많은 돈을 들이는 국가 홍보용 매체에 도움될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이바지하는 각계 전문가들의 훌륭한 글도 많다. 순수학문쪽과 문화계 등이 그렇다. 그러나 정치 경제 안보 등 우리 사회의 주된 쟁점을 다룬 언론과 학자의 글이 흔히 해외에 소개하기 민망한 수준인 것이 문제다. 세세히 설명할 수는 없지만, 몇 가지 유형을 지적할 수 있다.

대표적인 것은 보수 언론과 학자들이 쟁점에 관한 사실관계를 대충 열거하고 자신의 논리를 피력하는 듯 하다가, 반대 논리와의 비교 검증이 필요한 대목에 이르면 “나라를 망치려 하느냐”고 욕하고 끝내는 습관이다. 또 이에 맞서는 진보 언론과 학자들은 정권의 현실 정책 행보가 드러내는 문제점은 건성 지적한 채 “수구 기득권 세력의 반민주적 행태”를 비난하기 일쑤였다.

양쪽 모두 진지한 이념 논쟁에 익숙한 서구 사회에 그대로 소개하기 부끄럽다. 북한 문제 등 우리에게 특수한 이슈는 혼돈이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그러나 성장과 분배 또는 복지, 시장 자유와 국가 개입 등에 관한 서구의 오랜 고민과 경험 조차 멋대로 왜곡한 글은 다시 옮기기보다 오히려 감추고 싶을 정도였다.

경제뿐 아니라 헌법과 법 원칙 등에 관한 전문가와 언론의 글이 교과서 서술과 동떨어진 궤변으로 점철된 모습을 식견 있는 외국 독자들이 어찌 생각할지 자주 심란했다. 거슬리는 글을 다 추려내고 나면, 추천할 글이 없는 경우가 많은 때문이다.

나라 안팎에서 서구 이론과 경험을 배우고 연구한 언론과 학자들이 마치 ‘우물 안 개구리’인양 몽매한 글을 쓰는 이유는 뭘까. 단순하게 정리하면, 학자와 언론의 본분과 소신보다 이기적 손익을 먼저 헤아리는 풍토 탓일 것이다. 이를테면 해외 발표 논문은 균형 있게 작성할 학자들까지 국내 언론 등에 글을 쓸 때는 보수와 진보 어느 한쪽으로 확실하게 줄서는 게 아닌가 싶다. 그게 현재나 장래에 득 된다고 믿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풍토는 우리 역사와 사회에 뿌리깊지만, 지난 10년 사이 유례없이 심각하게 악화했다고 본다. 정권과 사회적 논쟁을 주도한 진보 세력의 강파른 인식과 논리, 거친 행보에 책임이 크다. 그러나 보수 쪽의 잘못도 못지않게 크다. 진보 정권과 세력이 불과 10년 만에 와해되다시피 한 것은 자업자득이지만, 보수세력도 민심을 잃고 10년 세월을 절치부심해야 했던 과오를 대선 승리로 모두 씻은 것은 결코 아니라고 본다.

■ 이기적 ‘우상 심기’ 경계해야

나는 우리사회 지식 풍토가 날로 황폐해지는 것을 막기위해 정권교체가 필요하다고 보았다. 그러나 지난 교훈을 올바로 되새기지 않으면, 진보의 실패를 그대로 되풀이할 것이다. 소설적 비유를 빌린다. 진정으로 국민과 진실을 위하는 충정 없이 국민의식 속에 거짓된 우상을 세우고 심는다면, 이내 민심 이반과 파탄이 올 것을 경계해야 한다. 무엇보다 지식인 사회의 각성이 절실하다.

강병태 논설위원 btk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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