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핵 프로그램 신고가 지체되면서 북핵 협상이 또 다시 정체기로 들어서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특히 6자회담 북측 수석대표인 김계관 외무성 부상이 북한을 방문했던 중국측 수석대표인 우다웨이(武大偉) 외교부 부부장에게 핵 프로그램 신고와 관련, “신고의 핵심은 플루토늄”이라며 우라늄 농축프로그램(UEP)을 신고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시사했다고 도쿄신문이 23일 보도하는 등 연내 핵 신고는 더욱 어려워지는 분위기다. 이에 따라 6자회담 재개 시기도 현재로선 불투명하다.
핵 신고의 최대 쟁점은 북측의 UEP개발 신고 여부. 북미는 물밑에서 ‘조용한’ 기 싸움을 진행하고 있지만 갈등이 전면화할 가능성도 있다. 우선 UEP는 북미 양측의 체면과 실리가 걸린 문제여서 2년 간 북핵 협상을 가로막았던 마카오 방코델타아시아은행(BDA) 북한자금 동결 문제와 비슷한 해결 과정을 밟는 게 아니냐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UEP문제의 해법이 복잡화, 장기화할 수 있다는 얘기다.
북한의 UEP 개발 문제가 어떻게 결론이 나오든 2002년 북미 제네바 핵 동결 합의 파탄과 함께 시작된 2차 북핵 위기와 마찬가지로 책임 소재 논란이 뒤따를 수밖에 없다. 북한이 UEP개발 사실을 시인할 경우 ‘사기 정권’으로 낙인 찍히게 된다.
1994년 제네바 합의에서 플루토늄을 포함, 핵 개발을 동결키로 했지만 북한이 뒤로 새로운 핵개발을 한 꼴이 되기 때문이다. 역으로 미국은 UEP 존재를 확인하지 못할 경우 이라크 전쟁 때와 같이 부정확한 정보로 국제 분쟁을 초래했다는 비판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UEP 향배에 북미 양측 모두의 체면이 걸려 있다.
나아가 UEP 존재 여부에 따라 경수로의 향방도 엇갈리게 된다. 제네바 합의에 따라 신포 지역에서 경수로 공사가 진행되다 합의로 중단됐는데 이 책임 소재에 따라 다시 경수로를 제공하는 문제가 상당한 영향을 받게 된다. 북한이 UEP 개발자재의 구입을 인정하면서도 개발을 부인하는 데는 경수로 확보라는 실리적 셈법도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UEP가 민감한 문제임에도 북미 양측은 협상의 판을 깰 의사는 없어 ‘조용한 해결’을 위한 모색이 당분간 계속될 전망이다. 북한은 전면적 핵 신고에 대한 거부감을 드러내면서도 핵 불능화는 성실히 이행하고 있다.
미국도 BDA문제와 달리 북한을 자극하는 공개적 압박은 자제하고 있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친서를 준 점, 북한이 우라늄을 농축한 정황이 있다는 워싱턴 포스트 보도에 대해 미 국무부나 정보 당국이 침묵하고 있다는 점으로 미뤄 조용한 해결에 우선 무게를 둔 것으로 풀이된다.
정진황 기자 jhchung@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