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 당선자가 내세운 교육정책의 핵심은 ‘실용’과 ‘자율’이다. 고등교육 뿐 아니라, 초·중등 분야에 모두 적용되는 코드다. 참여정부의 ‘평등교육 속 수월성 추구’와는 사뭇 다른 정책 기조가 교육의 구석구석에 반영될 것이라는 게 교육전문가들의 공통된 전망이다.
교육인적자원부 차관을 지낸 김영식 한국대학교육협의회 사무총장은 “이명박 정부는 철저히 수요자 중심의 교육 정책을 추구할 것”이라고 단언했다. 백순근 서울대 교육학과 교수는 “수월성과 형평성 간 조화를 맞추긴 하겠지만, 아무래도 수월성 교육에 무게의 중심을 실을 게 분명하다”고 말했다.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는 ‘실용성’을 유독 강조하고 있다. 교육정책의 경우 큰 틀에서 본다면 어떤 변화를 예상할 수 있나.
김 총장= 이 당선자와 한나라당의 교육 공약을 보면 크게 세 가지 정도의 변화를 유추해 볼 수 있다. 우선 포퓰리즘에 입각한 평등주의 기조에서 상당 부분 경쟁력 강화를 위한 실리위주로 갈 것이다.
둘째, 투입 중심의 정책 운영에서 성과와의 연동을 분명히 할 것이다. 셋째, 정부주도의 교육 정책에서 현장에 자율권을 대폭 이양하는 자율화 성향을 띨 것으로 보인다. 공급자 중심이 아닌 학생, 학부모라는 수요에 기반한 맞춤식 정책 대응을 하리라 본다.
백 교수= ‘수월성’ 개념이 좀 더 강조될 것이다. 사실 지난 10년 동안 형평성 쪽으로 교육 정책의 추가 이동한 측면이 있다. 이 당선자가 수월성 부분을 강조하다 보면 결과적으로 이해집단간에 자율성과 경쟁, 다양성과 같은 개념들이 부각될 것이다. 성과에 따라 최대한 운영의 자율성을 보장하리는 생각이 든다.
-차기 정부에서도 대학 입시가 여전히 최대 현안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이 당선자는 3단계 입시자율화 공약을 내걸었다.
백 교수= 대학수학능력시험과 내신 반영비율을 자율화 하겠다는 1단계 공약은 의지만 있으면 언제라도 실천할 수 있다. 가령 30%로 정해져 있는 학생부 반영비율은 권고사항에 불과하다. 당장이라도 변경이 가능하다. 자율권을 주더라도 대학들이 극단적 선택은 하지 않을 것이다.
2단계는 수능 과목을 줄이겠다는 것인데 복잡한 문제다. 현재 국민공통기본과정 등 학교에서 기본적으로 배우는 교과목들은 오랜 전통과 관례에 따라 만들어진 것이다.
내용은 물론 제도적 문제도 포함하고 있다. 따라서 이 부분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초ㆍ중ㆍ고 교육에 대한 재검토와 보완이 필요하다. 이렇게 본다면 대학에 완전 자율권을 부여하겠다는 3단계는 2단계의 추진 정도에 달려 있다.
김 총장= 그 동안 학생 선발에 대한 자율화 논의는 많았다. 그러나 정부가 더 이상 기준을 제시해서는 대학 현장과 괴리감만 커질 뿐이다. 기본적으로 학생선발 권한을 대학에 맡겨야 한다는 점에서는 동의한다.
단, 단계적 자율화를 하더라도 자율권을 행사하는데 따른 책무성 부분을 대학이 얼마나 고민하고 있고, 그에 걸맞는 제도적 장치를 구비하고 있는지는 면밀히 검토돼야 한다.
또 입시 자율화로 인한 공교육 훼손 부분도 짚고 넘어가야 한다. 선발양식의 변화로 실제 학부모들이 기대했던 것만큼 사교육비가 줄어드는지 등에 대한 분석이 필요하다. 제도 변경으로 야기될 수 있는 학교 현장의 혼란도 생각해볼 문제다.
-이 당선자는 공교육 정상화의 일환으로 자율형 사립고, 기숙형 공립학교, 마이스터고 등 다양한 형태의 고교들을 언급했다. 이런 학교들이 공교육을 살리는 데에 기여할 수 있나.
김 총장= 어찌됐건 차별화한 교육에 대한 갈증은 분명히 존재한다. 수요가 있는데도 규제만 하니 국내 교육 시스템 속에서 해소하지 않고, 해외로 나가는 것이다. 수요가 있기 때문에 특목고를 많이 만들면 공교육이 정상화될 것이라는 순진한 믿음이 있다.
하지만 다양한 학교들이 설치ㆍ운영되더라도 공교육 정상화라는 의도에 부합하게끔 제도적 뒷받침이 따라야 한다. 예를 들어 외국어고는 그 동안 어학 인재 양성이라는 설립 취지대로 운영되지 않은 면이 있다. 외고 졸업생이라면 일반고 학생보다 외국어에 확실히 능통해야 하고, 그런 부분을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에 대한 평가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
백 교수= 운영 효율성을 높여야 한다는 점은 전적으로 공감한다. 그러나 지난 30여년 동안 획일화한 ‘평준화 시스템’이 지배하면서 낮은 교육 수준을 벗어나기 어려웠다.
이 당선자가 구상하는 다양성을 갖춘 300개의 학교는 전체의 20% 수준인데 이 정도면 경쟁력 제고에 도움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모든 학교가 그래야 하는지는 차후 문제다. 굳이 수월성을 따지지 않더라도 기숙형 공립학교는 지역균형발전 차원에서, 마이스터고는 실업계 부흥의 한 방편이 될 수 있다.
김 총장= 지금도 고교 유형은 매우 다양하다. 실업계고도 명칭은 전문계고로 변경됐지만 여전히 분리모집을 해 부정적 인식을 탈피하지 못하고 있다. 전문계 고교도 기본적으로 특성화 학교다.
현 제도 하에서도 학생 모집을 따로 할 게 아니라 특성화군으로 한데 묶으면 실업계 문제도 해결되고 다양한 분야의 학교 육성에도 기여할 수 있다. 오히려 애니메이션고처럼 고교 과정은 상당부분 특화됐는데 대학 교육이 부실한 부분을 걱정해야 한다.
백 교수= 일부에서는 공교육 정상화라고 하면 국가가 교육과정을 제대로 운영하고 있느냐만 따진다. 하지만 고교 과정에서도 얼마든지 전문성을 드러낼 수 있다. 각자의 소질을 통해 상급학교로의 진학 기회가 주어지는, 다시말해 중등교육과 대학교육간 연계가 긴밀하게 이어질 수 있는 제도 마련이 필요하다.
-다양화 한 학교에 들어가려면 사교육 없이는 불가능할 것이란 시각도 적지 않다.
김 총장= 답은 나와 있다. 학원도 없고, 사교육을 받을 수 없는 외딴 시골에서도 교사들의 헌신으로 좋은 대학에 진학하는 사례가 있다. 이처럼 학교가 제대로 해줘 학생, 학부모의 머릿속에 학원이 필요 없다는 확신을 들게 하면 문제는 해결된다.
그러나 현재 시스템은 교사가 열심히 안 가르쳐 진학 성적이 신통치 않아도 결과에 책임을 지지 않는다. 학생들은 학교를 신뢰하지 못하게 되고, 학원과 같은 다른 유인 요인이 없으면 대학 진학이 어렵다는 판단을 한다. 교사들끼리 선의의 경쟁을 통해 정당한 보상을 하는 것은 당연한 대우다.
백 교수= 사교육비 문제의 핵심이 부실한 공교육이란 점은 누구나 동의한다. 교사간, 학교간 건설적인 경쟁이 없기 때문이다. 경쟁을 통해 생산성을 높이겠다고 하지만 현재의 공교육 시스템은 학생들 만의 경쟁이다.
옆에 있는 친구를 이기기 위해서는 다른 비법을 전수받는 게 유리한 구조다. 학교간 차이를 인정하지 못하고, 상대 평가에 의한 9등급제로는 개인의 능력을 드러내기 위한 동기부여가 되지 않는다.
-차기 정부가 추구할 대학 개혁의 방향은 어떻게 전망할 수 있나.
백 교수= 학생 선발에 대한 자율권이 주어진다는 전제 하에 개별 대학은 건학이념을 비롯한 여러 조건을 고려해 특성화를 서둘러야 한다. 고교 교육이 다양화하면 대학도 당연히 그에 맞는 교육 능력을 갖춰야 한다. 학생 선발을 자유롭게 하고 싶다면 그 대학에 입학한 학생이 원하는 교육을 제대로 해줘야 한다.
지금도 무수히 많은 특기자 전형이 있다. 하지만 과연 대학들이 특기생들을 위한 교육 여건이나 능력을 갖추고 있는 지는 의문이다. 선발 다양화도 중요하지만 대학의 특성화도 지속적으로 추진돼야 한다.
김 총장= 국가 경쟁력과 대학 경쟁력은 불가분의 관계이다. 선진화 사회는 인재를 얼마나 많이 배출하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인재의 품질이 관건이다. 변화의 걸림돌을 살펴보면 대학 개혁의 방향이 자연스레 도출된다. 첫째, 총장 직접 선출제도는 급변하는 사회 변화의 속도에 적합하지 않다.
학내 파벌 조성으로 총장이 리더십을 발휘해 선택과 집중의 특성화 전략을 짤 수가 없다. 둘째, 교수 이기주의, 즉 학제간 이기주의다. 폐쇄성을 빨리 털어야 한다. 신분이 100% 보장되는 체제가 유지된다면 대학의 유연성을 기대하기 힘들다.
-교육부의 기능과 역할을 설정하는 문제도 중요하지 않나.
김 총장= 1월 개최된 다보스 포럼에서 ‘힘의 방정식’이 제시된 적이 있다. 미래 사회는 비정부기구(NGO) 등 민간 단체가 이끌고, 세계 정세의 중심은 아시아가 될 것이라고 한다.
이런 맥락에서 교육부는 현재 갖고 있는 관리 기능과 권한을 현장에 대폭 넘겨주고, 그 공백을 1등 국가로 가기 위한 인적자원 개발전략을 짜는 데 역점을 둬야 한다.
백 교수= 고교, 대학의 자율성이 강화되려면 기본적으로 교육부의 관리 기능을 줄이고 지원 기능을 강화해야 한다. 현재 대학에 대한 정부의 지원은 턱없이 적은 수준이다.
또 대학이 할 수 없는 국가차원의 비전이나 정책 개발 기능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 요즘시대 흐름이 분절이 아닌 융합, 통섭이듯이 부처간 기능도 통합돼야 한다.
김이삭 기자 hiro@hk.co.kr사진= 최흥수기자 choisso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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