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에서 대권ㆍ당권 분리 문제가 터져 나왔다. 정치에 시행착오가 없을 수 없고, 어떤 제도든 현실변화에 따라 새롭게 적합성 논의의 대상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아직 집권하지도 않은 한나라당에 무슨 시행착오가 있으며, 애초에 집권을 겨냥해 손질한 현행 당헌ㆍ당규의 개정을 논의할 어떤 현실변화가 있는가.
한나라당 당헌ㆍ당규는 대통령이 명예직 외의 당직을 갖지 못하게 했다. 각종 선출직 후보 공천을 비롯한 당 운영에 직접 관여하지 말라는 뜻이다. 대신 당의 정강ㆍ정책을 대통령이 국정에 충실히 반영하고, 당은 대통령의 국정 운영을 도우며, 결과에 대해 당과 대통령이 함께 책임을 지도록 분명한 연결고리를 남겼다.
당권이 대선후보 경선에서 유리한 변수가 될 수 없도록 대선 18개월 전에 당직을 떠나도록 했다. 대통령의 과도한 권력장악을 막으면서도 당과 청와대의 합리적 상호작용을 규정했으니 흠잡을 데가 별로 없다.
그런데 이런 당헌ㆍ당규의 손질을 주장하는 것은 국민 모두가 기억하고 있는 정치적 약속을 저버리는 행위다. 경선 후 이명박 당선자는 측근인 이재오 전 최고위원의 퇴진을 종용하면서까지 박근혜 전 대표 측의 지원을 얻으려고 애썼다. 이는 총선 후보자 공천 등 당 운영 과정에서 박 전 대표 측의 의사를 최대한 존중하겠다는 뜻이었다.
그런데 대선이 끝났다고 그런 정치적 약속을 제쳐놓고, 대통령이 압도적 영향력을 가지는 당ㆍ청 일체화를 검토하겠다면, 앞으로 어떻게 이 당선자와 그 주변을 믿을 수 있겠는가.
노무현 대통령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는 주장도 헛되다. 대통령제의 특성 상 대통령은 당내 지위와 무관하게 당 운영에 커다란 영향력을 갖게 마련이다. 초기의 노 대통령도 그랬다.
대신 대통령이 국민의 신뢰를 잃으면 당 스스로 대통령과 멀어지려고 애쓰게 된다. 중요한 것은 당내 지위가 아니라 대통령에 대한 국민의 신뢰임을 노 대통령은 확인시켰다.
따라서 이런 논란을 만들기보다 매끄러운 권력인수와 적절한 정책개발에 힘을 쏟는 것이 이 당선자와 한나라당 모두를 살리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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