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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추사를 넘어' 秋史… 그리고 그를 넘고자 했던 문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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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추사를 넘어' 秋史… 그리고 그를 넘고자 했던 문필들

입력
2007.12.21 1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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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헌 지음 / 푸른역사 발행ㆍ324쪽ㆍ1만5,000원

시는 자하(紫霞)에서, 산문은 연암(燕巖)에서, 글씨는 추사(秋史)에서 망했다는 말이 있다.

시는 자하(조선시대 문신 신위의 호)에서 더 나아갈 경지가 없어졌고, 산문은 연암에 와서 정점에 이르렀으며, 서예는 추사 이후 그를 능가하는 사람이 없다는 탄식이다.

<추사를 넘어-붓에 살고 붓에 죽은 서예가들의 이야기> 는 추사의 가치를 되짚고, 추사의 빛에 가려졌던 문필가들을 재조명하는 책이다.

저자는 먼저 추사의 가치를 설명하기 위해 그 당시 서단에 집중한다. 이미 고전이 된 왕희지와 일부 서예가들의 서체를 답습하던 18세기, 중국 서단에 불현듯 나타난 인물이 판교 정섭이었다.

판교는 규격화된 전통 필법에서 벗어나 글씨를 회화의 수준으로 올려놓으며 시서화 삼절의 새로운 경지를 열었다. 그런 판교를 중국 서단의 흐름에 맞춰 한 걸음 뒤처져 따라가던 조선의 한 선비인 추사 김정희가 뛰어넘었다. 그의 필체는 당대의 한중일 서예계를 압도하고도 남았다.

저자는 추사를 “한국 서예 르네상스를 인도하면서 근대를 뛰어넘어 현대로 이어지는 예술의 경지를 개척한 인물”이라고 극찬한다.

그러면서도 추사 이후 그의 글씨를 답습만 하고 있는 서예계에 “이미 죽은 글씨를 배우고 가르치는 것은 의미 없는 일”이라고 일침을 놓고는 “오직 배워야 할 것은 추사의 깊고도 높은 뜻일 뿐, 그를 뛰어넘는 서체로 서예의 진보를 이뤄야 한다”고 강변한다.

책은 한국 근현대 서단을 풍미한 서예가들의 이야기를 통해 추사 이후 신필(神筆)의 등장을 꿈꾼다. 광복과 자주독립이라는 이상을 서예로 표현한 도마 안중근, 추사 이래 가장 많은 재주를 가졌던 소전 손재형, 중풍을 이겨내고 왼손으로 글씨를 써 좌수서의 신경지를 개척한 검여 유희강 등이 추사에 근접했던 인물이라면, 지금도 뜨거운 열정을 불태우고 있는 송천 정하건이 추사를 뛰어넘을 인물로 꼽힌다. 저자 김종헌은 2002년 대기업 CEO로 은퇴해 시골생활을 하며 30여년간 취미였던 서예 공부에 매진하고 있다.

허정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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