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시카와 메구미 지음ㆍ김준균 옮김 / 지상사 발행ㆍ242쪽ㆍ9,800원
#2004년 7월21일. 노무현 대통령과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일본 총리는 제주도 정상회담을 가졌다. 노타이 차림의 두 정상은 편안한 분위기에서 북핵 문제를 둘러싼 양국 현안 공조를 확인했다.
이날 만찬에는 프랑스산 최고급 와인이 곁들여졌다. 1년 뒤 2005년 6월20일. 서울에서 열린 한일 정상회담은 넥타이를 맨 정장 회담이었다.
만찬 메뉴는 4품 요리였다. 1년 전 제주도 만찬에서는 6품 요리였고 궁중요리까지 나왔다. 그 1년 사이 한국과 일본의 관계는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고 있었다. #2005년 10월14일. 자크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과 게르하르트 슈뢰더 독일 총리는 파리 엘리제궁에서 만찬을 가졌다. 총선에 패배해 물러나는 슈뢰더 총리를 환송하는 자리였다.
만찬에 나온 와인은 부르고뉴 지방의 최고 명주인 꼬르똥 샤를마뉴(94년산). 8,9세기 프랑스와 독일에 걸치는 광대한 지역을 지배한 프랑크왕국 샤를마뉴 대제(독일어로는 칼 대제)가 소유했던 밭에서 나온 것으로 양국의 같은 뿌리를 상징하는 와인으로 슈뢰더 총리를 환송한 것이다.
국가 원수나 국제기구 대표가 다른 나라의 정상들과 갖는 오찬이나 만찬은 단순한 식사가 아니라 다양한 정치적 메시지가 담긴 주요 외교 도구임을 보여주는 사례다.
저자는 일본 마이니치(每日)신문 국제부 기자로 오랫동안 취재하면서 알게 된 정상들의 식사에 대한 재미있는 뒷얘기를 소개하고 있다. 각국 정상이 모인 식사 테이블을 살펴보면 공식 발표문보다 훨씬 진솔한 외교관계를 알 수 있을 때가 많다고 저자는 말한다.
정상들의 식사는 시대에 따라 변했다. 1896년 프랑스를 방문한 러시아황제 니콜라이 2세를 환영하는 만찬에서는 18가지 요리와 디저트, 8종류의 음료가 나올 정도였다.
그러나 20세기 들어 정상들의 식사자리는 점차 간소해졌다. 정상 외교가 일상화됨에 따라 오랜 시간 테이블에 앉아 있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특히 1990년대 들어 건강식으로 바뀌었다.
빌 클린턴 미 대통령의 부인 힐러리 여사는 채소를 중심으로 한 컨트리 요리를 특기로 하는 요리사를 백악관 요리장으로 채용한 것이 상징적이다. 저자는 “정상들의 식사 형식은 변해왔지만 외교의 중요한 도구라는 내용은 달라지지 않았다”고 평가했다.
권대익 기자 dkw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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