잉글랜드 프리미어 리그가 최고의 축구 리그라고 불리는 모양이다. 가끔 TV로 중계되는 그 쪽 게임을 보고 있으면 역시, 하는 감탄사가 저절로 나온다. 경기 전체를 보여주는 것인지 하이라이트만 보여주는 것인지 분간이 서지 않을 정도다.
선수들의 플레이에 입을 벌리고 있다가 문득 어느 선수가 최고 대접을 받는 지 궁금해졌다. 맨유의 미더필더 호나우두가 먼저 떠오른다. 지난 시즌 득점왕을 차지했던 공격수 드로그바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무지한 예상은 언제나 빗나간다. 프리미어 리그에서 가장 높은 연봉을 받는 선수는 공격수나 미드필더가 아닌 수비수였다.
첼시의 존 테리는 일주일에 2억6,000만 원을 받는다. 수비수가 최고 연봉을 받는다니, 축구 문외한인 내게는 뜻밖이다. 축구는 축구공으로 하는 스포츠. 카메라는 항상 공을 드리블하는 미드필더나 공격수만 쫓는다. 캐스터는 슈터의 이름만 고성으로 지른다. 그런데 얼굴도 못 비치는 수비수가 최고 대접을 받고 있다.
로저 로젠블라트가 쓴 ‘유쾌하게 나이 드는 법’을 보면 까닭을 유추할 수 있다. 제목으로 짐작하겠지만 이 책은 축구에 관한 책은 아니다. 말 그대로 궁상 떨지 않고 나이 들 수 있는 방법에 관한 책이다. 삶이 어려움에 봉착할 때에는 읽어봐야 별 소용이 없겠지만, 그래도 이 정도만 알고 지킨다면 품위 있고 현명하게 늙어갈 법도 하다.
책에는 로젠블라트가 타임지의 수필가와 비평가로 지내면서 느낀 쉰 여덟 가지의 경쾌한 처세술이 담겨져 있다. 그 중 57번째 법칙이 ‘진짜 경기는 공과 멀리 떨어져 있는 곳에서 벌어진다’이다. 공만 쫓아서는 경기를 읽을 수 없다는 말이다.
축구가 그러하듯 사는 것도 마찬가지인가. 화면 안이 아닌 화면 밖에서만 세계를 읽을 수 있는 모양이다. 그래서 정치도, 경제도, 교육도 읽기가 어렵다. 카메라 한 대쯤은 하프라인 건너편의 존 테리가 무얼 하고 있는지 비춰줘야 하는 것 아닌가?
내친 김에 이 책에 등장하는 법칙을 하나 더 소개 한다. 법칙 22번. ‘단결과 조화, 휴머니티! 이런 거창하기 짝이 없는 말들이 들리면 당장 도망가라.’
김형준 EBS 프로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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