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며칠사이 올해 클래식 음악계 결산을 위한 기사의 도움말을 부탁받거나, 관련 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할 기회가 몇 번 있었다. 그때마다 빠짐없이 고가 티켓 논란이 주요 이슈로 취급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사실 맞는 말이다. 한껏 비싼 공연을 부부가 함께 본다면 식사까지 포함해 일용직 근로자의 한 달 벌이가 지출될 수도 있다. 특히 해외제작 오페라 프로덕션을 통째 들여오거나 유명 오케스트라를 초청한 경우 현지에서 보는 것보다 훨씬 비싸다는 문제가 제기되기도 했다.
하지만 안타까운 부분도 있다. 이번 논란의 출발이 됐던 빈 슈타츠오퍼의 <피가로의 결혼> 내한공연의 경우 출연료와 항공료, 체재비를 감안할 때 그 이하의 가격 책정이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피가로의>
따라서 “이렇게 비싼 팀을 꼭 데려와야 하는가”가 논쟁의 주제였어야 했는데, “청중을 우롱하는 바가지 요금 아니냐”는 쪽으로 흘러버리고 말았다. 그로 이해 공연계에 큰 기여를 해왔던 기획사가 억울할 정도의 비난을 뒤집어썼고, 흥행에도 타격을 받았다.
클래식 공연계에 시장원리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것은 세계 공통의 현상이다. 유럽이나 미국의 현지 티켓 가격이 순회 연주 때보다 저렴한 것은 장기적인 기업 후원금, 그리고 중앙 정부와 지방 정부의 보조금 덕분이다. 후원과 지원 없이 시장 기능에만 맡겨 놓는다면 모두 고사해 버릴지도 모르는 것이 순수 예술이다.
그런데도 정부와 민간 차원에서 쌍끌이로 돌봐주는 것은 삶의 근간에 흐르는 예술의 가치, 이를 인류 문화의 핵심으로 인식하는 오랜 전통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새 대통령이 선출되었다. 앞으로 출범할 새 정부에 많은 기대를 하고 싶지만 효율성을 추구하는 정책을 펴다 보면 문화예술계에도 시장원리라는 잣대 하나만을 들이대지 않을까, 그리하여 소위 장사가 되는 분야만 밀어주지 않을까 하는 염려도 없지 않다. 정책조차 시류에 편승한 인기를 쫓아다녀서는 곤란하다.
문화의 가장 근본이 되는 바를 지켜주는 것, 진정 가치 있는 그 무엇인가를 찾아내고 잘 키워내는 것, 예술을 향유하는 국민적 저변을 확대하는 것에 목표를 두어야 한다.
물론 그런 과정에 시장원리가 일정 부분 작동해야 한다는 점도 인정한다. 지원금도 무작정 늘릴 것이 아니라 의미 있는 사업에, 실력 있는 연주자에게, 의욕적인 단체에 우선 배정되어야 한다. 국내 연주자에 의한 싸고 수준 높은 공연이 늘어난다면 외국 유명 단체나 예술가라도 실력과 평판을 넘어서는 비싼 티켓으로는 발을 붙이기 힘들어 질 것이다.
음악공동체 무지크바움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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