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우파 이념을 넘어선 실용주의 노선이 새로운 시대흐름으로 자리잡고있다.
복지와 분배에 초점을 둔 좌파 정치와 이를 대체한 극단적 자유주의의 대처-부시식 신보수주의 시대가 막을 내리고 실리를 추구하는 중도 노선이 유럽을 중심으로 힘을 얻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가 ‘실용 정부’를 내세우면서 한국도 실용주의의 세계적 자장권에 합류한 셈이다.
■ 프랑스의 실용주의 합류
유럽에서 2000년 들어 급부상한 실용주의 노선이 최근 가장 극적으로 드러나는 곳은 프랑스다. 일찍부터 중도 실용주의로 방향을 튼 영국, 독일 등과 달리 좌우파 대립이 극심했던 프랑스는 5월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 등장 이후 극적인 변화를 거듭하고 있다.
지난달 연금개혁안으로 불거진 대대적인 노조 파업이 국민적 반발 여론으로 실패한 것이 대표적 사례. ‘파업천국’이라 불릴 만큼 갈등의 골이 깊었던 계급간 이데올로기적 대립을 대신해 시장 활력과 경제 회복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가 광범위하게 형성됐다는 반증이다.
특히 우파적 가치를 내세워 당선됐던 사르코지 대통령 자신도 이념을 넘어선 눈부신 ‘세일즈 외교’로 주변국을 놀라게 하고 있다. 인권 문제가 걸려 있는 러시아, 중국, 리비아 등과 우호 관계를 강화해 원자로, 여객기 판매 등에서 천문학적인 세일즈 실적을 거두고 있는 것.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과 한껏 친분을 과시한 그지만, “외교에서 가치도 중요하지만 프랑스 기업의 이익이 더 중요하다”는 논리로, 신보수주의를 배반한 셈이 된 것.
■ 좌우파 정당 체제의 소멸
먹거리 및 일자리 창출 등 시장활력과 국민 실생활에 초첨을 맞춘 실용주의의 선두 주자는 1990년대 후반 등장한 영국의 토니 블레어 정부였다. 좌우파 이념을 넘어선 ‘제3의 길’로 유명한 블레어 정부의 실용주의 노선은 유럽 각국에 영향을 끼쳐, 거의 모든 유럽 국가들이 채택하고 있는 실정이다.
뉴스위크지는 최근 “유럽의 좌우파 정당의 경제 정책이 거의 차이가 없고 단지 선거에서 권력을 잡기 위한 싸움만 있다”면서 “전통적인 좌우파 정당 체제 자체가 소멸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실제 독일에서는 신 중도노선 속에서 좌파의 사회민주당과 우파 기독연합당이 대연정을 맺어 앙겔라 메르켈 총리가 집권하고 있고, 이탈리아에서는 지난해 민주당이 좌로는 공산당원에서 우로는 기민당, 자민당원까지 끌어모아 연합 정당을 구성해 집권에 성공했다.
덴마크의 안데르스 포그 라스무센 총리도 최근 세금 개혁, 실업 해소 등 국민 실생활에 밀접한 공약으로 3선 연임에 성공했다.
이 같은 유럽의 실용주의 노선은 세계 각국으로도 확산되고 있다. 최근 호주 총선에서 존 하워드 총리가 이끄는 보수 집권 여당이 노동당에 참패한 것도 시대 변화에 둔감한 채 신보수주의 가치에만 집착했기 때문이란 분석이다.
■ 세계화의 무한 경쟁 시대
실용주의 노선의 득세는 무엇보다 세계화의 무한 경쟁에 따른 여파 때문이란 것이 중론이다. 국경을 넘어선 기업간 무한 경쟁으로 기업 경쟁력을 강화하는 것이 노사 모두가 공생하는 길이란 인식이 확산된 것이다.
한 국가 내에서 노조, 사용자, 정부간 세력 관계를 다투는 좌우파간 구분이 옅어진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실용주의 노선은 결국 이런 흐름을 탄 셈이다. 여론조사회사 립소스의 루카 코모도는 “중도 실용노선은 단순하면서도 강력한 추진력을 갖춘 정치를 원하는 유권자들의 요구에 대응해 나온 것”이라고 말했다.
송용창 기자 hermeet@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