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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책] 타오르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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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책] 타오르는 책

입력
2007.12.20 1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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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진우 / 문학과지성사이글이글 타오르는 책… 책나무를 나르는 새떼

‘그 옛날 난 타오르는 책을 읽었네/ 펼치는 순간 불이 붙어 읽어나가는 동안/ 재가 되어버리는 책을/ 행간을 따라 번져가는 불이 먹어치우는 글자들/ 내 눈길이 닿을 때마다 말들은 불길 속에서 곤두서고/ 갈기를 휘날리며 사라지곤 했네 검게 그을려/ 지워지는 문장 뒤로 다시 문장이 이어지고/ 다 읽고 나면 두 손엔/ 한 움큼의 재만 남을 뿐/ 놀라움으로 가득 찬 불놀이가 끝나고 나면/ 나는 불로 이글거리는 머리를 이고/ 세상 속으로 뛰어들곤 했네/ 그 옛날 내가 읽은 모든 것은 불이었고/ 그 불 속에서 난 꿈꾸었네 불과 함께 타오르다 불과 함께/ 몰락하는 장엄한 일생을/ 이제 그 불은 어디에도 없지/ 단단한 표정의 책들이 반질반질한 표지를 자랑하며/ 내게 차가운 말만 건넨다네/ 아무리 눈에 불을 켜고 읽어도 내 곁엔/ 태울 수 없어 타오르지 않는 책만 차곡차곡 쌓여가네/ 식어버린 죽은 말들로 가득 찬 감옥에 갇혀/ 나 잃어버린 불을 꿈꾸네’(시 ‘타오르는 책’ 전문). ‘오늘의 책’ 200회를 넘기면서, 남진우(47)의 시집 <타오르는 책> 이 떠올랐다. 이 시에서 ‘책’이란 단어를 ‘세계’라는 단어와 바꿔놓고 읽어보자. 책(=세계) 읽는 자는 한 시절 ‘불과 함께 타오르다 불과 함께 몰락하는 장엄한 일생’을 꿈꾸지만, 어느새 그는 책(=세계)이 ‘식어버린 죽은 말들’로 가득 찬 것을 느낀다. 하지만 그것도 ‘눈에 불을 켜고’ 책읽기를 계속할 때만 얻을 수 있는 깨달음일 것이다.

이 시집에는 표제시 말고도 책을 모티프로 한 강렬하고 아름다운 시편이 많다. ‘여기 한 그루 책이 있다/ 책이 덩굴을 내밀어 내 몸을 휘감아오른다/ 무수한 문장들이 내 몸에 알 수 없는 무늬를 새기며/ 사방으로 뻗어나간다. 아무리 베어내도/ 무성하게 자라오르는 책나무/ 책나무 속에 들어가 눕는다/ 내 속에 뿌리 뻗은 나무에서 일제히 날아오르는/ 저 눈부신 새떼’(시 ‘책 읽는 남자’ 부분).

하종오 기자 joh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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